광복절조차 차별 받는 시각장애인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시행에도 꿈쩍 않는 국가 및 지자체
지난 8월 15일은 온 국민이 아는 67주년 광복절이었다. 제 67회 광복절을 맞이하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많은 국민의 참여와 함께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순국한 애국선열의 넋을 기리고자 전국적으로 200개 이상의 참배와 위령제, 경축행사 및 문화공연을 개최하였다.
서울시 세종문화회관, 대구시 대구문화예술회관, 인천시 종합예술문화회관, 전남 도청 김대중 강당, 광주시 시민문화관, 대전시 시청 대강당, 경북 도청강당 등 전국에서 열린 경축행사와 문화공연장은 말 그대로 일제강점기 조국을 잃은 암흑 속에서 새롭게 빛을 되찾은 광복의 기쁨을 경축하는 행사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시각장애인은 시력을 잃은 암흑 속에 있었고,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광복의 기쁨을 함께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행사와 공연장에는 이를 안내하기 위한 각종 안내 자료와 브로슈어 등을 준비하고 배포하였다. 하지만 전국 200여개가 넘는 행사장에서 시각장애인이 광복절 행사를 함께 할 수 있도록 행사 안내자료 등의 내용을 접근하기 위한 점자자료나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삽입된 자료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최하는 국가적 행사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을 위해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삽입된 자료를 제공하도록 장애인 복지법이 개정되었고, 지난 7월 27일 이 개정안*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장애인복지법의 개정안 中
제22조(정보에의 접근) ③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적인 행사, 그 밖의 교육·집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사를 개최하는 경우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 및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또는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삽입된 자료 등을 제공하여야 하며 민간이 주최하는 행사의 경우에는 수화통역과 점자 또는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삽입된 자료 등을 제공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개정된 법이 시행되었으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장애인 복지법 개정에 따른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개정안을 발의한 주승용 의원은 “시각장애인의 인권을 강화하고 알권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장애인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보장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일선 공무원들에게는 전혀 이에 대한 제재 조치가 명확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은 탓에 대부분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8.15 경축행사를 통해 여실히 나타난 것이다. 이를 도입하고 지켜야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법 이행 여부는 점자·음성 변환용 솔루션 도입 실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된 2012년 1월 26일 이후 현재까지 점자·음성변환용 코드를 생성하기 위한 솔루션을 도입한 지방자치단체는 전국에서 진천군과 군포시 단 두 군데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천, 광주, 대전 등의 광역단체와 기초단체에서는 지금까지 전혀 도입을 하지 않고 있어 심각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시행되었음에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의 나 몰라라 하는 식의 모순이 반복되는 것이다. 또한 기존에 도입을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번 8.15 광복절 행사 자료에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삽입된 자료를 제공한 곳이 거의 없다는 것 또한 큰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시행에도 불구하고 법 이행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장애인 복지법과 함께 장애인의 차별을 근본적으로 철폐하기 위해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장차법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위한 수단 중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를 제공토록 하고 있는데, 이 기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삽입된 자료가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장차법에서는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삽입된 자료를 정당한 편의제공 수단 중 하나로 다루지 않고 기기만 다루고 있어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고 시행되었음에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법 이행이 따라오지 않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유명무실한 법 개정으로 타락될 우려가 큰 것이다.
점자·음성변환용 코드는 일반 인쇄물(묵자인쇄물)에 같이 제작되어지기 때문에 비장애인이 접근하는 자료를 시각장애인도 똑같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폰용 무료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어 접근의 폭이 높아 졌고, 스마트폰을 통해 점자 출력기와의 연동도 가능해 졌다. 또한 스마트폰 활용 시 문자를 크게 확대해서 보거나, 해당 내용을 58개국 언어로 번역하는 무료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어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어르신, 저시력인, 다문화가정,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정보소외계층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가 없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일반 인쇄물에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적용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최하는 행사에서 각종 자료에 대한 정보 접근성 향상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법이 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광복절 경축행사는 시각장애인이 경축할 수 있는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고, 결국 국민으로서 함께 나누어야할 국경일의 행사에 시각장애인은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장애인을 위한 대표법인 장애인복지법은 분명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국가적 행사에서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을 위해 점자 또는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삽입된 자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있었던 8.15 경축 행사에서는 법이 요구하는 의무 이행이 전혀 없었던바 오는 10월 3일 개천절과 10월 9일 한글날 등의 행사에서는 얼마나 많은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적용된 행사 안내책자가 제공되는지 다시 한 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모습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장애인복지법과 장차법 등의 법이 있음에도 이를 지켜야하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외면한다면 법이 이를 지키도록 하고 있는 민간단체와 기업 등은 당연히 이를 외면할 것이며, 복지국가와 경제 강대국을 강조하는 정부의 각종 시책을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