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인도 위의 볼라드 직접 제거에 나선다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회장 최동익)는 오는 11월 5일(금) 오후 3시부터 광화문 일대에서 볼라드 제거 투쟁을 갖는다.
두 눈 멀쩡히 뜨고 다니는 비시각장애인 조차도 방심하는 순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볼라드가 우리네 시각장애인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볼라드로 인해 시각장애인들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볼라드와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데, 위험천만한 볼라드는 대한민국 시각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보행환경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볼라드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원활한 보행을 방해하는 ‘차량의 인도 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하지만 차량 진입 차단 효과는 미비한 반면 지체장애인의 이동수단인 휠체어와 영유아들이 타고 다니는 유모차의 이동을 방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에서 시작된 볼라드 설치에 제동이 걸리는 듯 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에 의해 설치된 볼라드는 민간으로 확대되어 사인간의 주차분쟁과 같은 사적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남용되는가 하면, 심지어 시각장애인의 길을 안내해주는 점자블록 위에 볼라드를 세워 놓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으니 시각장애인의 보행환경은 날로 훼손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볼라드로 인해 시각장애인들의 활동마저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독립보행을 하는 시각장애인들의 무릎 관절은 성할 날이 없다. 심지어는 볼라드에 1차로 부딪힌 뒤 쓰러지며 2차 피해를 입기도하지만 볼라드로 인해 부상을 당한 시각장애인은 자비를 들여 치료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현행 국가배상법 제5조를 보면 영조물의 설치 및 관리상의 하자로 인해 손해를 입을 경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배상을 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즉 시각장애인에게 볼라드가 설치되어 있음을 점자블록으로 알리지 않았거나 기타 볼라드가 갖춰야할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아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자는 볼라드를 설치한 지자체나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자전거를 타다 볼라드에 자전거의 페달이 걸려 넘어지면서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된 사건에서 법원은 지자체에게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08. 4. 4 선고 2007 가단 53970). 하지만 볼라드로 인한 시각장애인들의 부상은 국가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기엔 그 빈도가 너무 잦은, 소위 일상의 문제일뿐만아니라 현실적으로 독립보행 중이던 시각장애인이 사고 상황의 증거를 수집해 행정소송을 진행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문제이기 때문에, 우후죽순 생겨난 볼라드를 제거하는 것만이 사회적 약자인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위험제거의 방법일 것이다.
물론 볼라드를 제거해야 할 기관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아닌 지자체다. 하지만 이들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볼라드 제거 시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예산타령만 할 뿐 어떠한 액션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우리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예산타령만을 일삼는 당국의 처사를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 시각장애인의 자유로운 보행 여건을 확보하기 위해 장애물이자 흉기인 볼라드를 직접 뽑아내는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오는 5일 오후 3시부터 광화문 일대에서 갖는 볼라드 제거 투쟁은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더 이상은 길을 걷는 일이 전쟁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길 원하는 간절함을 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당연한 권리행사가 될 것이다.
그 어떤 법 이전에,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할 도로에 장애물이자 흉기를 설치하도록 방관한 모든 이들이 눈을 감은 채로 길을 걸어본 이후라야 장애인의 아픔을 안다면 그것이 어찌 사람 존중의 사회요 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비시각장애인들도 인도를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데, 하물며 지뢰게임을 하듯 보행을 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안전한 보행권을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요구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더는 묵과할 수 없기에 우리 스스로가 나서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볼라드를 직접 깨는 행동을 감행한다. 부디 보행의 아픔을 호소하는 우리들의 외침과 행동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소망하며 많은 기자여러분의 취재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