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서
장애인방송을 망치고 있는 EBS는 부당한 입찰공고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시정하라!
한국교육방송공사 (이하 "EBS"라 한다)는 지난 3월 6일 장애인방송 중 화면해설방송 제작 외주업체를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공고하였다. 공고에 따르면 주 280시간 이상의 화면해설방송물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기업 및 단체라면 누구나 가격 제안만으로도 응모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공모기간을 7일로 하였다. 본 공모와 관련하여 화면해설방송의 소비자인 시각장애인을 대표하는 우리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하 "한시련"라 한다)는 EBS의 이러한 몰지각한 처사에 대해 경악을 금할 수 없으며 누구보다도 질 높은 장애인방송제작에 앞장서야 할 공익방송이 사회적 책무를 져버린 모습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
시각장애인을 포함해 영상물을 독립적으로 시청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제작되는 것이 화면해설(Descriptive Video Service 또는 Audio Description) 서비스이다. 화면해설은 초당 수만 가지에 이르는 시각적 정보 중, 시각장애인이 방송 프로그램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만을 전문 화면해설 작가가 취사선택하여 정해진 시간 내에 전달할 수 있도록 화면해설 대본을 작성한다. 이후 전달력 높은 해설자(현재는 주로 전문 성우 분들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짐)가 낭독한 음원을 영상편집 엔지니어가 원본 영상에 삽입하면 비로소 화면해설의 제작이 완성된다.
이와 같이 제작과정이 복잡하고 전문적이며 시각장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엄격한 인식이 필수적이고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작가의 판단과 선택의 전문성이 매우 요망되어 고도의 훈련과정을 통해 배양된 전문 인력에 의해서만 제작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에 참여할 전문 인력, 편집 장비, 기존에 제작한 화면해설 품질에 대한 모니터링 과정도 없이 자신들이 제시한 조건만 맞으면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 2년 동안이나 화면해설방송을 맡기겠다는 EBS의 처사는 화면해설의 소비자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도, 간과할 수도 없는 중대한 사건이다.
최저가 입찰이 마치 금과옥조라도 되는 양 가장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EBS의 외주 제작사들에 대한 갑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화면해설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전문기관이 많은 상황도 아닌데 기술적 평가요소 없이 최저가로만 입찰한 것은 더 저렴한 가격에 장애인방송의 의무를 이행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꼼수가 아니면 무엇인지 EBS는 즉각 해명해야 할 것이다.
최저가 입찰을 강행하고 있는 EBS는 장애인방송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이번 공고를 통해 세상에 알리고 있다. 통상적으로 최저가 입찰은 자동차, 사무용 가구 혹은 전자제품과 같이 특정한 기능을 조건으로 조달을 통해 구입하는 경우에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법률>에서도 예외적으로 공개경쟁입찰이나 최저가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이나 기술적 요소를 감안한 입찰과 계약이 가능하게 하고 있고 화면해설 등 장애인방송제작은 이러한 예외에 들어간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EBS는 소비자인 장애인의 권익과 편의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업무편의만 생각하여 이러한 일을 추진한 것이다.
EBS의 장애인방송에 대한 이와 같은 그릇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러한 현상은 다른 방송사들로도 급속히 번져 이 땅에 장애인방송이 제대로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우리 한시련은 이러한 참담한 현실이 도래할 것이 두렵고 이 두려움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 이에 EBS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규탄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EBS는 공정하고 투명한 기술평가방식으로 화면해설방송 외주제작을 공모하라!
하나. EBS는 품질경쟁력이 아닌 가격경쟁력을 조장해 화면해설방송의 품질을 하락시키지 마라!
하나. EBS는 동일한 화면해설 프로그램의 재방송, 삼방송을 금지하고 재방송하는 장애인방송에 대해서도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라!
하나. EBS는 화면해설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합리적인 조정 없이 최저가 입찰을 강행한 관계자들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하라!
2018년 3월 9일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