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체육계가 ‘더반의 기적’ 하루 만에 일어난 ‘쓰나미’의 충격에 휩싸여 있다. 강원 평창이 3수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서 성공했다. 장애인 체육계도 평창 유치에 힘을 보탰다. 2018년 장애인 동계올림픽이 열린다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한 단계 높아질 터닝포인트이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 뒤 열린 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상전벽해 이상이었다고 한다. 장애인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비장애인 체육계에는 아직도 7월 6일 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들려온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평창~”이란 소리가 귀에 맴돈다. 이제는 7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서 성공적으로 동계올림픽을 치르는 일만 남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이를 위한 기초적인 단계가 있다. 국회가 예산을 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순리대로 더반의 기적 다음 날 평창 지원을 위한 특별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의원 41명이 당당하게 서명했다.
그런데 장애인 체육계는 법안을 들여다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애인 동계올림픽 개최를 체감해서가 아니라 황당해서다. 법안 어디에도 장애인이란 단어를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형식은 완성됐지만 중요한 게 빠졌다. 물론 지원 법안에서 빠졌다고 장애인올림픽을 치르지 못하는 건 물론 아니다. 조직위가 구성된 뒤 장애인 체육계가 여기에 숟가락을 얹을 수도 있다. 그런다면 그것은 ‘구걸’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당연한 건데 구걸하려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기획단계부터 함께 가야 성공적인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다.
우리나라 장애인 체육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목이다. IOC 실시단이 평창을 방문했을 때 장애인 대회도 역대 최대 규모로 열겠다고 약속한 지가 몇달 되지 않았다. 장애인 체육에 대한 인식이 없다 보니 어느새 머릿속에서 싹 지워져 버렸다. 정부의 동계스포츠 중장기발전계획에도 장애인 스포츠는 없다. 특별예산 3000억원 중 겨우 1%만 장애인 스포츠에 지원한다고 돼 있다.
장애인올림픽은 비장애인올림픽의 덤이 아니다. 흔히 슈퍼에서 보는 ‘1+1’ 상품이 아니다. 엄연히 독립적으로 치러지는 대회다. IOC는 아예 2000년 시드니하계올림픽 이후 함께 열도록 의무사항으로 만들었다. 비장애인 올림픽이 끝난 뒤 같은 도시에서 한달 뒤 개최해야 한다고 장소와 개최 시기까지 못박았다. 내년 런던올림픽 조직위 공식 명칭도 ‘2012 런던올림픽 및 장애인올림픽 조직위원회’다. 그런데 우리는 법안을 발의할 때부터 명칭이 삭제돼 있다.
이런 불상사는 예견됐는지 모른다. 더반에서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최종 프레젠테이션할 때 윤석용 장애인체육회장도 휠체어를 타고 연단에 올랐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치위 대표단의 일부 관계자들은 수군거렸다. 왜 저 사람이 연단에 있느냐고. 비장애인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이 함께 간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윤 회장은 “부잣집 형님 잔치를 가난한 동생이 구경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비장애인들이 잊은 게 또 하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노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뇌졸중 등 여러 원인으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일수록 장애인에 대한 범위가 넓다. 복지 정책의 하나다. 결국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배려다.
윤 회장은 지난달 말 국회의원 신분을 활용해 평창 특별법의 수정 법안으로 ‘2018평창동계올림픽 및 장애인올림픽대회 지원 특별법안’을 국회 제출했다. 세상은 변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애써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