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을 잡고 무대를 오르면 연주가 채 시작되지 않았는데 한 손에는 땀이 흥건하다. 현을 조금이라도 잘못 짚으면 음이 심하게 틀어지는 악기라 시종일관 긴장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까지 완벽한 선율로 객석에서는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시각장애우 특수교육기관 혜광학교 중학교 1학년 박지훈(16·서구 검암동)군. 박군은 단지 시력이 나쁜 게 아니라 외형적으로 어딘가 다르다. 키 168㎝, 몸무게 37㎏, 무척이나 왜소하다. 시각장애 1급과 다한증, 기흉까지 지훈이가 앓고 있는 질병이다.
지훈이와 바이올린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훨씬 앞서 일반초등학교에 다니던 지훈이에게 예기치 않은 어둠이 찾아왔다. 9살 때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실려갔다. 여기서 의사 처방에 문제가 생겨 부작용으로 번졌고 '스티븐존슨 증후군'이 나타난 것이다.
이 병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 또는 독성물질로 피부혈관이 손상, 39~40도 고열과 출혈성 발진이 나타나며 화상환자 같은 증상을 보인다. 심할 경우 심장이나 안과질환으로 커진다. '스티븐존슨 증후군'은 지훈이를 통해 국내에 처음 알려졌고 당시 가장 위험한 10단계 수준이었다. 이를 본 주위에서는 안락사를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절실한 바람은 곧 기적으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서 차츰 증상이 호전, 지금까지 성장했다. 2009년께 사회와 친해지고 자신감을 얻으려 잡은 것이 바이올린이다. 지금은 전문적으로 레슨을 받는다.
지훈이는 희귀병으로 고통과 싸우면서도 희망을 노래한다. 꿈이 있기 때문이다. 수준급 바이올린 연주자와 함께 국선변호사가 되겠다는 목표다.
박군은 "힘든 형편으로 소송을 걸지 못하는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싶다. 나 역시도 잘못된 처방으로 오랜 소송을 거친 경험이 있다"면서 "돈이 없어서 법에 호소를 못하는 이들을 돕고 바이올린 연주로 마음의 병을 치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편한 신체조건으로 남과 다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체력이 부족할 뿐 뭔가 성취하겠다는 열정은 더욱 강하다"고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