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5일, 청와대가 스마트폰용 공식 응용프로그램(앱)을 선보였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용으로 우선 제공되는 청와대 앱은 최신 뉴스, 사진과 동영상 자료,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연동 기능 등을 담고 있다. 이 날 공개한 보도자료에서 청와대는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대통령과 청와대 관련 소식을 접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누구나’에 장애인은 빠져 있나보다. 청와대 앱은 장애인 접근성을 따져볼 때 기대를 밑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을 읽을 때 청각에 의존하는 시각장애인에겐 음성 안내 메뉴가 매우 중요하다. 메뉴나 목차, 내용 등을 음성으로 안내받을 수 있도록 ‘그림설명’(알트 텍스트)를 넣어주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시각장애인이 웹 콘텐츠를 읽기 위해선 대개 ‘스크린 리더’라는 화면낭독 SW를 쓴다. 모바일 기기에서도 다르지 않다. iOS 기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은 자체 스크린 리더를 내장하고 있다. 이 스크린 리더를 켜면 이용자가 화면을 조작하는 데 맞춰 음성으로 화면 내용과 메뉴를 읽어준다. 시각장애인은 안내 음성을 들으며 원하는 내용을 찾아가거나 해당 메뉴를 활성화하게 된다.
청와대 앱은 어떨까. 세부 기능별 접근성 지원 여부는 뒤로하고, 전체 내용을 제대로 읽어주는지 아이폰용 앱을 대상으로 실험해봤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iOS 기반 휴대기기에는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지원 기능이 기본 내장돼 있다. ‘설정→일반→손쉬운 사용’으로 들어가 이용자 환경에 맞게 기능을 켜거나 끄면 된다. 이 가운데 시각장애인이 화면을 읽을 때 주로 쓰는 ‘보이스오버’(화면낭독기) 기능을 활성화하고 청와대 앱 주요 화면을 읽어봤다.
청와대 앱을 실행하면 가장 먼저 안내 화면이 뜬다. 보이스오버를 켜도 안내문 내용을 읽어주지 않는다. 안내문이 이미지 파일로 제작된 탓으로 보인다. ‘닫기’ 버튼도 ‘닫기’로 읽어야 함에도 그냥 ‘버튼’으로 읽는다. 화면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은 그게 어떤 기능을 하는 버튼인지 알 수 없다.
청와대 앱은 크게 ▲뉴스/브리핑 ▲영상/사진 ▲소셜미디어 ▲푸른누리 ▲관람 등 5개 메뉴로 나뉜다. 화면 구성은 메뉴마다 똑같다. 상단에 메뉴명이 머릿말 형태로 표시되고, 하단엔 각 메뉴별로 이동할 수 있는 도구막대가 뜬다. 화면 가운데는 해당 메뉴 내용을 뿌려주는 본문이다.
청와대 앱의 가장 큰 접근성 장벽은, 상단 메뉴명과 하단 도구막대를 전혀 읽어들일 수 없다는 점이다. ‘뉴스/브리핑’ 화면을 읽어보자. 상단 메뉴명인 ‘뉴스/브리핑’과 하단 도구막대를 음성 안내로 읽을 수 없다. 본문 내용만 읽어줄 뿐이다. 하단 도구막대의 5개 메뉴도, 오른쪽 위에 달린 ‘포털검색’ 버튼도 그냥 ‘버튼’이라고 읽는다. 시각장애인은 자신이 어떤 메뉴로 접속했는지도, 어디로 이동해야 할 지도 파악알 수 없다. 이런 현상은 메뉴명과 도구막대에 스크린 리더가 읽어들일 수 있는 텍스트 정보를 입력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소셜미디어’ 메뉴는 더욱 심각하다. 이 곳은 청와대가 개설한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 글들을 모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런데 보이스 오버를 활성화해도 글 본문에 해당하는 블로그 글 제목을 읽어주지 않는다. 이는 청와대 앱 문제라기보다는, 해당 블로그 서비스에서 제대로 접근성을 지원하지 못하는 게 원인으로 보인다. ‘미투데이’나 ‘트위터’ 메뉴로 들어가면 제대로 본문 내용을 읽어준다.
어린이신문 ‘푸른누리’ 글들을 담은 메뉴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이 곳은 대체로 본문 내용을 충실히 읽어주도록 구성돼 있지만, 본문 내용이 한 문단으로 처리돼 있다. 글 전체를 읽으려면 손가락으로 화면을 5번 정도 아래로 내려야 할 정도로 긴 글이 많다. 시각장애인으로선 전체 내용을 스크린 리더로 읽기도 만만찮을 뿐더러, 도중에 원하는 대목으로 이동하기도 어렵다. 문단을 나눠 보다 편리하게 음성 안내를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접근성 면에선 문제될 게 없지만, 사용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관람’ 메뉴는 주요 정보를 텍스트 대신 이미지로 대체했다. 그런데 이미지로 처리된 본문 내용은 음성 안내가 안 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W3C는 (모바일)웹에 이미지를 올릴 때는 그림설명(알트 텍스트)을 넣도록 권유하고 있다. 해당 이미지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음성 안내를 받을 수 있게 한 조치다.
‘주변 맛집’은 청와대 근처 맛집을 소개한 약도를 담았다. 역시 이미지로 제작됐다. 스크린 리더는 이미지로 된 지도를 읽지 못한다. 그래서 대개는 지도 아래에 해당 지도 내용을 텍스트로 요약하는 형태로 부가 설명을 달아둔다. 그러지 않으면 이 메뉴는 시각장애인에겐 쓸모 없다.
왜 청와대 앱이 이런 ‘사소한’ 대목까지 신경써야 할까 싶기도 하겠지만, 달리 생각해볼 일이다. 미국은 1998년 제정된 ‘재활법 508조’에 따라 연방정부가 만들어 배포하거나 구매하는 SW나 데이터엔 장애인 접근성을 의무 제공하도록 했다. 지난해 공표한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 법’은 장애인 접근성을 지원하지 않는 제품은 미국 내 수입을 제한하도록 규정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7년 4월10일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국내 모든 웹사이트가 접근성을 준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법의 효력이 모바일 앱까지 미치는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목적을 되씹어볼 일이다. 그 본질은, 장애인도 차별 없이 온라인에서 정보를 소비하고 유통하도록 보장하는 데 있으니까.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20년 넘게 시각장애인 정보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백남중 부장은 “비장애인이 낯선 곳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듯, 장애인도 낯선 서비스나 SW를 만나면 전체 내용을 먼저 둘러본다”라며 “웹서비스나 모바일 앱을 제작할 때 전체 내용과 메뉴를 제대로 읽어주고 선택한 영역이 제대로 활성화되는지만 개발사가 확인해도 접근성을 웬만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국내 시각장애인은 2010년 12월말 기준으로 25만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