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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뉴스클리핑 - [‘실명’ 현장인터뷰] 시각장애 배우 이영호, ‘안 보이는 나’를 연기하다 <서울신문 2011.07.29>

작성자협회관리자

작성일시2011-08-01 오전 1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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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연기는 아예 접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캐릭터가, 나를 찾는 작품이 또 다가오는군요.”

29일 오전 11시 30분 인천국제공항에서 이장호 감독과 시각장애를 겪고 있는 배우 이영호 형제가 의기투합한 영화 ‘실명’의 촬영이 진행됐다. ‘실명’은 형 이장호 감독의 권유로 스크린에 데뷔해 80년대 청춘스타로 활약했지만 망막색소변성증으로 결국 실명에 이른 이영호 본인의 인생사를 그리는 실화 영화다.

인천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이영호는 “보이지도 않는데 카트를 밀며 바리케이트에 계속 부딪혔더니 정말 힘들다”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타이트한 블랙 티셔츠와 블루진의 캐주얼 차림을 한 이영호는 전성기 이후 30년의 시간이 지났고 실명이란 고통을 겪었지만 여전히 반듯한 몸매와 매력적인 미소를 잃지 않았다.

1974년작 ‘어제 내린 비’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이영호는 이후 ‘바람 불어 좋은 날’,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 영화에 출연하며 미남 영화배우로 사랑받았지만 전성기를 누릴 무렵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다.

이장호감독과 동선체크를 하는 이영호씨

1981년 영화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이영호는 뉴욕대 Cinema Studies Dept.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던 중 그나마 유지했던 시력을 거의 상실했다. 이날 촬영 분은 시력을 잃은 이영호가 입국해 딸(박채원 분)과 아내(박승옥 분)를 만나는 장면이다.

입국장에서 사랑하는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하는 이영호는 볼 수 없는 바리케이트에 부딪히게 된다. 2003년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이영호는 눈이 보이지 않는 자신을 연기하기 위해 공항 인파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촬영 전 리허설을 거듭하며 꼼꼼한 동선 체크를 반복했다.

“80년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배우의 세계와는 작별을 하려고 했습니다. 공부를 더 해서 영화평론가나 형님처럼 영화감독을 하려고 했죠. 게다가 시력을 잃고 나서는 연기를 한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그런데 여전히 나를 찾는 캐릭터와 작품이 있네요.”(웃음)

영화촬영을 위해 헤어를 다듬는 이영호씨

시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블라인드’의 주인공 김하늘은 시각장애 캐릭터를 연기하며 가장 힘든 점으로 “실제 보이는데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을 꼽았다. 하지만 이영호는 시력을 잃은 배우로서 눈이 보이지 않는 자신을 연기하기 위해 청각 등 다른 감각에 의지한 채 암흑 속에서의 ‘어둠 속의 연기’를 펼쳤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연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겁니다. 특히 동선 체크가 가장 힘들어요. 정해진 방향대로 움직이려 해도 그게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이영호에게는 이장호 감독의 “컷” 소리를 듣고 재촬영을 위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조차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친형의 세심한 방향지도와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바리케이트에 부딪히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배우 이영호에게 ‘시력상실’이란 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연기 장치일 뿐이다.

한편 ‘실명’은 이장호, 배장호 등 1980년대를 풍미한 영화감독 5명이 의기투합하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옴니버스 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지난 25일 대부도에서 크랭크인한 ‘실명’은 오는 29일 촬영을 끝으로 대단원을 마무리하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출품을 앞두고 있다.

영화 '실명'촬영중인 이영호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