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이 운영하는 시각장애인용 ATM(금융자동화기기)의 상당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장애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시각장애인용 ATM를 도입하면서 장애인의 금융 이용권 보장 등 사회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내세운 명분이 무색한 상황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농협, SC제일은행, 국민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운영중인 시각장애인용 ATM 중 상당수가 음성인식 안내 프로그램이 작동이 안되거나 음성안내를 받을 수 있는 연결단자를 막아버려 장애인들이 이용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실제 서울대 안에 비치된 대다수 ATM과 우정사업본부가 운영하는 ATM도 장애인의 이용을 차단하고 있었다.
현재 서울대에는 농협중앙회 지점 1곳과 5개의 출장소가 운영중이다. 이중 교수회관에는 1대의 시각장애인 ATM이 비치돼 있었지만, 음성안내 단자를 막아놨다. 학생회관에 설치된 5개의 ATM 중 4대도 시각장애인 혼용 ATM이지만, 이중 2대가 음성 단자를 막아놓은 상황이다. 서울대 캠퍼스 신공학관에 비치된 ATM 3대 중 1대도 장애인 ATM이지만 역시 차단됐다.
광화문에 위치한 정부종합청사 내 우체국이 설치한 장애인혼용 ATM 1대 역시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쉽지 않다. SC제일은행의 경우 서울대입구점 365코너에 설치된 ATM 4대 중 2대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인권침해 상황이 속출하자, 농협중앙회에 경고조치를 내리고 개선을 요구했지만 농협은 이를 개선하지 않고 있다.
시각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에게 지점당 1대씩 시각장애인 ATM 설치를 권고해 은행들이 보급에 나서고 있지만,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는지 파악도 안하고 있다"며 "ATM을 이용하지 못해 지점 창구를 방문해도, 해당 직원들이 폰뱅킹을 사용하라며 귀찮아한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 최근 시중 은행들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지만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게 시각장애인 협단체들의 주장이다.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장애인 ATM표준 제정에 나선 금융결제원, 한국은행 산하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 등은 보급 된지 2년이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다.
정부는 2013년까지 추가로 약 5000대의 시각장애인 ATM을 설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미 전맹인, 저시력자 대상의 ATM 표준을 제정했다. 또 올해 안에 신체장애인을 위한 표준제정에도 나설 계획이며, 장애인 금융 편의를 정상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도 수립했다. 하지만 실제 제대로 사용되는지 확인도 안하고 시설 확충에만 열을 올리는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은행들은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시각장애인용 ATM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신한은행이 1300대, 우리은행이 1630대의 시각장애인 ATM기기를 보급했고, 올해 각각 1400여대, 1800여대를 추가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전체 ATM 9389대 중 시각장애인 ATM 991대를 설치했고, 올해 안에 800대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농협도 493대의 시각장애인 ATM을 운영중이며, 올해 700대를 추가 도입한다. SC제일은행은 올해 65대를 추가로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수익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은행들이 사후 관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사용자가 그리 많지 않아 각 지점 등에 설치된 장애인 ATM 운영 실태를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이 ATM을 사용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일반인들의 불만성 민원도 접수되고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출처 : 디지털타임스, 2011-03-01, 박세정 기자 sjpark@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