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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뉴스클리핑 - 뇌수술만 네번...시각장애 날려버린 '색소폰 신동' 이수정 <조선닷컴, 2011-02-04>

작성자협회관리자

작성일시2011-02-07 오전 9: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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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안경을 낀 소녀가 자기 몸통만 한 알토 색소폰을 집어 들고 곧장 20세기 최고의 재즈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Parker)의 명곡 ‘도나 리(Donna Lee)’를 연주한다. 소녀의 손끝에서 고음과 저음이 절묘하게 반복되며 경쾌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11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능수능란한 연주를 선보인 ‘색소폰 신동’ 이수정(11·의정부 경의초등학교 5학년)양을 주간조선이 인터뷰했다. 이양은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오른쪽 눈은 0.6 정도의 시력을 가진 시각장애우지만, 색소폰으로 희망을 연주하고 있다.

이제는 유튜브 등 인터넷을 통해 이양의 연주는 그 어느 유명 재즈 연주자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초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 색소폰주자 대니 정과 함께 듀엣으로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니 정은 이양에 대해 “듣는 기능이 놀라울 만큼 발전해 있고, 배운 지 1년밖에 안 된 꼬마가 자신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며 “훌륭한 연주자 될 것”이라고 찬사를 쏟아냈다.

놀라운 재능을 지녔지만, 사실 이양에게는 아픔이 많다. 그는 첫 돌을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며 병원 안에서 맞아야 했다. 이양의 어머니는 이양이 태어난 후 ‘두개골 조기 융합증’이라는 판정을 받고 급하게 수술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이 병은 태어나면서부터 뇌의 숨골이 정상적인 사람보다 빨리 닫혀버려서 뇌가 빨리 굳어버리는 병이다. 첫 뇌수술로 목숨을 건진 이후에도 이양은 다섯 살 때 한 번, 일곱 살 때 두 번 등 총 세 차례의 뇌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시력을 살리지는 못했다.

뇌 수술 후 의사가 “수정이는 스무 살까지는 꾸준히 뇌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하고 일곱 살 때까지 방학이면 꼭 뇌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3년 전부터 뇌 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 MRI 등 고가의 검사비용 때문이다. 이양의 아버지는 의정부의 한 고깃집에서 일한다.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월급으로 네 식구가 살기에도 빠듯한 상항에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병원 찾기를 망설이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양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던 뇌 수술도, 넉넉하지 못한 경제사정도 아니다. 수술 이후 나타난 시각장애와 남과는 다르게 성장한 외모 때문에 받아야 했던 세상의 시선들이 수정이를 더 괴롭혔다. 어머니는 “수정이가 학교에서 ‘왕따’였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이양에게 삶의 희망이 되어 준 것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순전히 취미를 만들어 주기 위해 시킨 색소폰이 지금은 이양의 모든 것이 됐다. 호흡량이 많아야 하는 악기라 혹 호흡을 강하게 했을 때 뇌와 눈에 압력이 높아질까 봐 부모님은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괜찮았다.

이양이 색소폰에 빠지게 된 계기는 2009년 5월 ‘의정부 관현악 경연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다. 딱히 선생님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인터넷 등을 통해 이론을 배운 것이 전부였지만, 덜컥 ‘금상’을 받았다. 이양의 어머니는 “아마도 세상이 수정이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실력으로 봐준 첫 경험이 그때”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유명 색소폰 주자이자 색소폰 부품인 마우스피스 제작자로 유명한 고성훈씨를 만나며 이양의 색소폰 인생이 변하기 시작했다. 고씨는 자신의 연습실도 쓰게 해 주시고 부담스러운 고가의 색소폰 부속품까지 후원해 줬다.

고씨와의 만남으로 이양은 비로소 색소폰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됐다. 연주곡의 범위도 재즈와 R&B 등으로 넓어졌다. 고씨에 따르면 이양은 귀로 곡을 듣고 음을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해 머릿속에 있는 음을 오선지 위에 바로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했다.

국내 최고의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씨는 이양의 연주를 듣고 “얘는 한국이 아니라 외국에서 연주해야 하는 친구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고 고씨는 전했다.

이양은 올 1월에 즐거운 일이 하나 생겼다. 국내 재즈 색소폰계의 스타 김지석씨가 이양의 연주를 듣고 제자로 받아들였다. 자신만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생겨 기쁘다는 이양은 “모든 꿈을 색소폰에 걸었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닷컴, 2011-02-04, 조동진 기자 zzang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