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덮친 화마에 숨진 장애인…"자격증 24개, 열심히 살았는데"
입력2022.08.29. 오전 5:30
수정2022.08.29. 오전 8:38
[혼자 이동 어려운 시각장애인, 화재로 또 목숨 잃어
지원사서비스 있지만 하루 4시간꼴 이용 가능 한계
"경보기 등 설비 오류 잦아 대책마련 시급"]
누나가 세상을 떠났다. 올해 나이 쉰둘이었다. 영정사진 조차 준비되지 않았다. 4년 전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따고 사진관에 가 찍은 졸업 사진을 빈소에 올렸다. 동생 최모씨(50)는 누나가 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누나는 태어날 때부터 약시였고 열아홉살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최씨 생각에 '도움받을 사람'은 누나였다. 최씨는 "그런데 누나는 남들을 돕겠다며 웃음치료사,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따더라"라며 "주경야독했다"고 했다. 생전 누나가 딴 자격증 24개를 최씨는 빈소 앞 테이블에 펼쳤다. 이어 접객실 종업원들을 이끌고 그 앞에 가 "누나가 이렇게 열심히 산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지난 24일 오전 0시27분쯤 누나가 살던 서울 은평구 빌라에 불이 났다. 누나는 4층에 살았고 불은 2층 원룸에서 났다. 불길은 원룸 밖으로 번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가 3, 4층을 덮었다. 누나는 현관 안쪽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소방대원들이 누나를 심폐소생술(CPR) 하며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지만 누나는 결국 사망했다.
불 난 밤 누나는 혼자였다. 30여년 시각장애인 남편과 살았지만 4년 전 이혼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를 배정받았지만 한달 120시간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루 4시간꼴이다. 화재 당시 지원사는 곁에 없었다.
누나는 시각장애 1급(장애등급제 폐지 전)이었다. 장애가 가장 심한 등급이다. 좋은 눈 시력이 0.02 이하면 1급을 받는다. 지원사가 곁에 없으면 이동이 불가능하다. 집도 찾아오지 못해서 빌라 10m 거리 배달대행소 사장에게 '빌라 앞까지만 데려다주세요' 대여섯번 부탁했다고 한다. 누나는 불난 빌라에 지난달 28일 이사했다.
빌라에 자동화재탐지설비(경보기),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그래서 화재 당일 입주민들은 불 난 사실을 늦게 알았다. 불난 원룸에 사는 A씨(55)는 "잠에서 깼더니 이미 시커먼 연기가 천장을 덮고 있었다"고 했다. 소방법상 이런 설비 설치 의무는 건물 설립 당시 법을 따른다. 해당 빌라는 경보기,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최씨는 누나가 숨진 사실을 당일 오전 6시30분쯤 알았다. 휴대폰 화면에 전화가 왔다며 '02'로 시작한 번호가 떴다. '보이스피싱 아냐?' 잠깐 고민했지만 전화를 받았다. 그 이른 시각 피싱할 일당은 없을 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 남성은 '여보세요, 경찰입니다'라고 했다. 경찰은 누나가 사망했으니 대학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빈소는 지난 25일 오후 3시쯤 차려졌다. 누나가 숨진 지 하루하고도 반나절 더 흐른 시점이었다. 누나가 실려 간 대학병원에서 1km가량 떨어진 다른 장례식장이었다. 대학병원 장례식장에도 빈 빈소가 있었지만 하루 이용료 최소 70여만원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누나는 원래 안마사였다. 모은 돈이 적지 않았는데 이혼 직후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그 충격이 컸다. 정식 진단은 아니지만 우울증과 공황장애 증세를 보였다. 일할 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장애인 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를 생활비로 썼다.
최씨는 꼬박 하루 고민해 대학병원과 협력해 장례비를 깎아주는 다른 장례식장으로 누나 시신을 옮겼다. 그 심정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누나가 기초생활수급자였기에 국가가 지원하는 장제급여 80만원도 신청하려고 한다. 누나는 그나마 동생이 있어서 상황이 낫다.
은평구 한 동사무소 관계자는 "빈소 이용료, 입관료 등 장제비를 마련 못해 시체를 포기하는 수급자 가족도 많다"며 "시체를 포기하면 관공서가 공영 장례를 치른다"고 했다.
불 난 방향, 대피로 몰라 불안..."인적 지원 늘려달라"
25일 저녁 8시쯤 40평 남짓 접객실 테이블 네개는 시각장애인으로 가득 찼다. 누나는 대한안마사협회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인 지난 19일에는 '일자리 없느냐'며 협회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도 빈소를 조문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내고 "시각장애인은 현장 상황과 환경 등 눈으로 봐야 아는 정보 파악이 어려워 재난 상황에서 피해가 크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응급안전안심서비스'로 가정 내 경보기 등 화재 설비를 지원하지만 한계가 크다고 한다. 연합회는 "잦은 오류와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그 효과가 미비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응급안전안심서비스 개선 △활동지원사 서비스 개선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이번 사고를 비롯해 홍수 등 재난 상황에 장애인들 인명피해가 계속되는데 정부와 지자체는 장애인 안전을 등한시하고 있다"며 "장애인과 노인, 아동 등 취약계층 안전을 도모하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달라"고 밝혔다.
지원사서비스 있지만 하루 4시간꼴 이용 가능 한계
"경보기 등 설비 오류 잦아 대책마련 시급"]
지난 24일 서울 은평구 한 빌라에서 불이 나 시각장애인 최모씨(52)가 숨졌다. 고인 동생 최씨(50)는 누나가 "여자대장부"라고 했다. 낮에는 안마사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 사회복지사 학사, 석사 학위를 땄다. 자격증도 24개 땄다고 했다. 최씨는 자격증들을 갖고 와 누나 빈소 앞 테이블에 차렸다. 접객실 종업원들에게 자격증들을 보여주며 "누나가 이렇게 열심히 산 사람"이라고 했다./사진=김성진 기자
누나가 세상을 떠났다. 올해 나이 쉰둘이었다. 영정사진 조차 준비되지 않았다. 4년 전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따고 사진관에 가 찍은 졸업 사진을 빈소에 올렸다. 동생 최모씨(50)는 누나가 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누나는 태어날 때부터 약시였고 열아홉살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최씨 생각에 '도움받을 사람'은 누나였다. 최씨는 "그런데 누나는 남들을 돕겠다며 웃음치료사,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따더라"라며 "주경야독했다"고 했다. 생전 누나가 딴 자격증 24개를 최씨는 빈소 앞 테이블에 펼쳤다. 이어 접객실 종업원들을 이끌고 그 앞에 가 "누나가 이렇게 열심히 산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지난 24일 오전 0시27분쯤 누나가 살던 서울 은평구 빌라에 불이 났다. 누나는 4층에 살았고 불은 2층 원룸에서 났다. 불길은 원룸 밖으로 번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가 3, 4층을 덮었다. 누나는 현관 안쪽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소방대원들이 누나를 심폐소생술(CPR) 하며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지만 누나는 결국 사망했다.
불 난 밤 누나는 혼자였다. 30여년 시각장애인 남편과 살았지만 4년 전 이혼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를 배정받았지만 한달 120시간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루 4시간꼴이다. 화재 당시 지원사는 곁에 없었다.
누나는 시각장애 1급(장애등급제 폐지 전)이었다. 장애가 가장 심한 등급이다. 좋은 눈 시력이 0.02 이하면 1급을 받는다. 지원사가 곁에 없으면 이동이 불가능하다. 집도 찾아오지 못해서 빌라 10m 거리 배달대행소 사장에게 '빌라 앞까지만 데려다주세요' 대여섯번 부탁했다고 한다. 누나는 불난 빌라에 지난달 28일 이사했다.
지난 24일 오전 0시 27쯤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 4층짜리 빌라 2층에서 불이 났다. /사진제공=은평소방서
빌라에 자동화재탐지설비(경보기),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그래서 화재 당일 입주민들은 불 난 사실을 늦게 알았다. 불난 원룸에 사는 A씨(55)는 "잠에서 깼더니 이미 시커먼 연기가 천장을 덮고 있었다"고 했다. 소방법상 이런 설비 설치 의무는 건물 설립 당시 법을 따른다. 해당 빌라는 경보기,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최씨는 누나가 숨진 사실을 당일 오전 6시30분쯤 알았다. 휴대폰 화면에 전화가 왔다며 '02'로 시작한 번호가 떴다. '보이스피싱 아냐?' 잠깐 고민했지만 전화를 받았다. 그 이른 시각 피싱할 일당은 없을 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 남성은 '여보세요, 경찰입니다'라고 했다. 경찰은 누나가 사망했으니 대학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빈소는 지난 25일 오후 3시쯤 차려졌다. 누나가 숨진 지 하루하고도 반나절 더 흐른 시점이었다. 누나가 실려 간 대학병원에서 1km가량 떨어진 다른 장례식장이었다. 대학병원 장례식장에도 빈 빈소가 있었지만 하루 이용료 최소 70여만원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누나는 원래 안마사였다. 모은 돈이 적지 않았는데 이혼 직후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그 충격이 컸다. 정식 진단은 아니지만 우울증과 공황장애 증세를 보였다. 일할 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장애인 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를 생활비로 썼다.
최씨는 꼬박 하루 고민해 대학병원과 협력해 장례비를 깎아주는 다른 장례식장으로 누나 시신을 옮겼다. 그 심정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누나가 기초생활수급자였기에 국가가 지원하는 장제급여 80만원도 신청하려고 한다. 누나는 그나마 동생이 있어서 상황이 낫다.
은평구 한 동사무소 관계자는 "빈소 이용료, 입관료 등 장제비를 마련 못해 시체를 포기하는 수급자 가족도 많다"며 "시체를 포기하면 관공서가 공영 장례를 치른다"고 했다.
불 난 방향, 대피로 몰라 불안..."인적 지원 늘려달라"
지난 24일 불이 난 서울 은평구 빌라 1층 현관문 모습. 소방관들이 부순 현관 유리가 한쪽으로 치워져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25일 저녁 8시쯤 40평 남짓 접객실 테이블 네개는 시각장애인으로 가득 찼다. 누나는 대한안마사협회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인 지난 19일에는 '일자리 없느냐'며 협회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도 빈소를 조문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내고 "시각장애인은 현장 상황과 환경 등 눈으로 봐야 아는 정보 파악이 어려워 재난 상황에서 피해가 크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응급안전안심서비스'로 가정 내 경보기 등 화재 설비를 지원하지만 한계가 크다고 한다. 연합회는 "잦은 오류와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그 효과가 미비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응급안전안심서비스 개선 △활동지원사 서비스 개선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이번 사고를 비롯해 홍수 등 재난 상황에 장애인들 인명피해가 계속되는데 정부와 지자체는 장애인 안전을 등한시하고 있다"며 "장애인과 노인, 아동 등 취약계층 안전을 도모하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달라"고 밝혔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