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점자블록’ 맨홀뚜껑··· 시각장애인은 길 잃는다
[스토리세계] 무관심인가, 실수인가…잘못 놓인 점자블록 맨홀뚜껑
입력 2019-07-12 17:40:59, 수정 2019-07-14 11:49:43
사람들이 이용하는 거리의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에겐 길 안내자 역할을 한다. 인도에 설치된 맨홀뚜껑 위에도 점자블록이 새겨진 이유다. 그런데 일부 맨홀뚜껑의 경우 점자블록이 원래 방향과 어긋난 채로 방치돼 시각장애인을 긴장하게 한다. 지하 통신선 작업 등 여러 이유로 작업자들의 맨홀뚜껑을 열고 작업을 마친 뒤 다시 덮는 과정에서 부주의나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이 초래한 결과로 보인다.
◆차선 그려진 맨홀뚜껑이 왜…90도 가까이 돌아가기도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와 은평구 일대 인도 약 5㎞를 걸으며 눈에 띄는 맨홀뚜껑들의 위치를 살펴 봤다. 비뚤어졌거나 전혀 상관없는 곳에 놓인 점자블록 맨홀뚜껑 여러 개를 발견했다.
기자가 시각장애인이라고 가정하고 맨홀뚜껑을 살피니 엉망진창이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근처에서는 점자블록과 상관없는 곳에 꽂혀있었으며, 보신각 인근 점자블록 사이에는 노란선(차선으로 추정)이 그려진 맨홀뚜껑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가져다 놓지 않는 이상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광화문역 근처 맨홀뚜껑에 ‘상수도’가 표기된 것을 보고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문의했더니, 해당 구역이 종로구청 담당이라면서도 즉시 조치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중에 상수도사업본부가 보내온 사진을 보니 원래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옮긴 맨홀뚜껑도 주변 점자블록과 어긋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놓일 물건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은평구청 근처에서도 비뚤게 방치된 맨홀뚜껑들이 발견됐다. 심지어 하나는 90도 가까이 돌아가 시각장애인 보행 시 지팡이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점자블록이 시각장애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안하면 단순 실수라고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맨홀뚜껑 옮겨도 제때 알 수 없어…“부족한 의식 여실히 드러내”
종로구 등에 따르면 맨홀뚜껑 유지·보수는 구청 도로 또는 보도(步道) 관련 부서가 담당하지만, 정비 업체가 맨홀 작업 사항을 당국에 알릴 의무가 없어서 점자블록이 비뚤게 놓여도 제때 알기는 어렵다. 은평구청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업체가) 맨홀 정비 사실을 (구청에) 꼭 알려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는 맨홀뚜껑에 점자블록을 부착하지 않는 게 옳다고 말한다. 점자블록이 어긋날 가능성을 처음부터 없애려는 이유다. 하지만 점자블록 형태‧규격과 함께 횡단보도 인근 설치 방법을 포함한 국토교통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은 맨홀을 과속방지턱 설치 금지 위치 중의 하나로만 언급할 뿐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편의시설지원센터 홍서준 연구원은 세계일보에 “맨홀뚜껑이 돌아가 점자블록이 기존과 어긋나면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혼란을 줄 수 있다”며 “잘못 놓인 맨홀뚜껑은 점자블록을 얼마나 소홀히 생각하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