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버스 점자노선도…시각장애인들 “있는지도 몰라”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서울 전체 정류장의 3분의 1만 설치
시, 민간위탁사업 이유로 관리 소홀
마을·광역버스 정보 등 빠져 ‘부실’
시각장애인의 버스 탑승을 돕기 위한 ‘점자노선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자노선도는 서울시가 2013~2014년 시각장애인 교통 편의를 위해 만들었다. 서울시 전체 정류장 6254곳 중 2285곳에 설치했다. 그게 끝이다. 2015년 이후 추가 설치하지 않았다. 5년간 노선 변경을 반영하지 않았다. 애초 마을버스나 광역버스 정보가 빠진 부실 노선도이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버스정류장을 돌아봤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류장 기둥에 적힌 점자노선도는 11개 노선 중 7개뿐이었다. 마을버스, 경기·광역버스 정보는 없다. 마을버스는 관할 자치구, 경기버스와 광역버스는 해당 운수회사가 직접 점자로 버스 번호를 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희 3거리’ ‘이화여대 입구’ ‘서대문역 사거리’ 등 정류장엔 점자노선도가 아예 없었다. 정류장 이름이 잘못 적힌 경우도 있었다. 마포구 ‘마포한강푸르지오’ 정류장에는 ‘합정역’이라 써진 점자노선도가 붙어 있다.
시각장애인 전조은씨(27)는 “매일 버스를 타는데도 정류장에 점자노선 서비스가 있는지 몰랐다”며 “노선도가 붙어 있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씨는 유명무실한 점자 안내 대신 음성으로 버스 노선을 읽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다. 그는 “앱으로 정류장에 어떤 버스가 오는지 파악하고 버스가 오면 기사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번호를 물어보고 탄다”고 했다. 버스정류장 음성단말기가 도착 버스 정보를 안내하지만, 동시에 여러 대의 버스가 도착하면 정확한 버스 정차 위치를 알 수 없다. 약시인 남정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자립생활지원센터 소장은 “버스는 여러 대가 한번에 오기 때문에 그때마다 위치에 맞춰 타는 것이 어렵다”며 “주변에 물어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민간 위탁 사업’이라는 이유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다. 정류장 3분의 1에만 노선도가 있는 이유, 설치 기준, 변경 노선 반영 여부에 대한 질문에 서울시 관계자는 “유지·보수·관리는 민간업체가 하고 서울시는 업체를 관리할 뿐이다. 민원이 들어오면 조치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관성 없는 점자노선은) 장애인 당사자들과 현장 점검을 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며 “설치 이후에 장애를 입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의 버스 이용률이 낮은 이유는 편의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서비스,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각화 서비스, 지체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를 많이 갖춰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