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각장애인 대학총장…차별의 벽 넘다
소통으로 총신대 정상화 선언한 이재서 신임총장
15세때 열병 앓은후 시력 잃어
대학원서조차 안받아주던 시절
가난·장애 딛고 美유학까지
밀알선교단 창설 21개국 전파
"나를 이끈 힘은 믿음과 인내
헬렌켈러 너무도 훌륭하지만
그녀를 품어준 사회도 훌륭"
국내 첫 시각장애인 대학 총장으로 선출된 이재서 총신대 신임 총장(66)은 감회에 젖었다.
"모든 장애인의 기원을 가슴에 안고 벽을 하나 뚫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됐다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열다섯 살 때 원인 모를 열병을 앓고 완전 실명을 한 이 총장의 일생은 도전 그 자체였다.
"전남 순천의 너무나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그런 집에서 시각장애인까지 됐으니 어땠겠어요. 가족이 논밭으로 나가면 텅 빈집에서 시력이 있던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다 포기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더군요. 그래서 세상에 나가기로 결심했죠."
서울로 올라와 서울맹학교에 진학한 이 총장은 1973년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 전도집회에 우연히 참여하게 됐다. 그때 기독교 믿음을 받아들인 그는 신앙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얻는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인간은 커다란 동상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에 불과하다는 표현을 했어요. 아무리 열심히 기어 다녀도 동상 전체를 볼 수 없는 존재라는 거죠. 동상을 곧 신의 존재라고 본다면 인간에게는 신을 파악할 능력이 없는 거죠. 이미 인간은 신이 있고 없고를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겸손해지더군요."
이 총장은 서울맹학교를 거쳐 총신대를 다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성서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다. 이후 템플대학원 사회복지행정학 석사, 럿거스대학원 사회복지정책학 박사를 거쳤다. 서울맹학교 시절부터 열심히 갈고닦은 영어 실력이 큰 도움이 됐다. "서울맹학교를 떠나 32세 늦은 나이로 유학을 가서 일반인과 섞여 대학을 다닐 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
이 총장은 세계적인 선교단체가 된 밀알선교단 창립자이기도 하다. 밀알선교단은 현재 21개국에 100여 개 지부가 있다. "대학 시절 밀알선교단을 처음 만들었어요. 장애인들을 위한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어요. 맨손으로 시작했는데 이만큼 커졌습니다. 밀알선교단 지부를 만들기 위해 각 대학을 돌아다니다 지금의 아내도 만났죠."
이 총장은 장애인의 도전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자세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헬렌 켈러도 훌륭하지만 헬렌 켈러를 품은 그 사회도 훌륭한 겁니다. 3중 장애인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기회를 준 사회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 총장은 1996년 모교인 총신대 교수에 임용됐다. 물론 첫 시각장애인 교수였다. 교수가 됐지만 차별은 여전했다.
"교수로 임용이 됐는데도 학생 면접에 참여시키지 않았어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면접을 하느냐고 생각한 거죠. 사실 한 사람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는 외모나 표정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목소리와 답변 태도, 답변 내용이 더 중요하죠. 사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나쁜 마음에서 비롯된 것보다 잘 몰라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장애`에 대한 소통과 고민이 부족한 거죠."
최근 몇 년 동안 총신대는 학내 문제로 시끄럽다. 전 총장은 배임증재 혐의로 현재 구속된 상태다. "지금 총신대의 문제는 신뢰가 깨졌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 재정도 상당히 어려워졌고요. 공정, 투명, 소통을 바탕으로 신뢰를 회복하겠습니다. 학교의 설립 주체인 예장 합동 교단과의 관계도 회복할 예정입니다."
이 총장은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힘이 `인내의 대가`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보통 오늘만 생각해요. 오늘 힘들면 세상이 무너진다고 생각하죠. 장애인들이 특히 그래요. 그런데 앞날은 모르는 거잖아요. 오늘을 잘 참고 견디면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제가 만약 42년 전 입학원서 접수창구에서 하루 종일 인내하지 않고, 화를 내거나 돌아섰다면 오늘의 제가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