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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뉴스클리핑 - [법률 프리즘]수능시험에 점자정보단말기를 쓰는 이유

작성자담당자

작성일시2018-11-28 오후 1: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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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프리즘]수능시험에 점자정보단말기를 쓰는 이유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컴퓨터보다 점자정보단말기로 시험 보기를 원했다. 수학영역 때문이었다. 수학 문제는 기호가 많아 컴퓨터로 볼 수 없었다. 문제를 풀려면 중간 계산식을 점자로 적고 확인해야 하는데 점자정보단말기가 가장 유용했다.

 
대입수학능력시험용 카세트테이프, 점자 시험지, 일반 시험지(왼쪽부터).  


나는 시각장애인이다. 5년 전인 2013년,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한빛맹학교 학생들을 초대한 자리에 갔었다. 한 학생이 수능시험도 변호사시험처럼 컴퓨터로 보고 싶다고 했다. 중도실명한 시각장애인이라 나는 점자 읽는 속도가 느렸다. 점자 문제지로는 시험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변호사시험은 컴퓨터에 시각장애인용 화면읽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문제를 파일로 받아 프로그램이 읽어 주는 소리를 듣고 풀었다. 나는 수능시험을 본 한참 뒤에 실명한 터라 수능시험에서 컴퓨터를 쓰지 않는다는 말에 몹시 놀랐다.

그 뒤 다시 학생들을 만나 어려움을 들었다. 시력이 거의 없어 글자를 볼 수 없는 학생들은 점자 문제지로 시험을 본다고 했다. 점자를 빨리 읽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문제를 녹음한 테이프를 준다고도 했다. 스마트폰이 널리 사용되는 세상에서 카세트테이프라니, 난 학생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가져다 준 모의고사 녹음테이프에는 정말로 지문, 문제, 선택지 등이 녹음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지문이 긴 국어영역은 점자로 읽기가 힘들고 녹음테이프를 다시 듣기 어려워 지문을 한 번만 듣고 문제를 푼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영어영역이었는데 독해 문제가 원어민이 말하는 속도로 녹음되어 있어서 도저히 듣고 풀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컴퓨터로 시험 보면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은 이미 2007년부터 시각장애 응시자가 컴퓨터를 쓸 수 있었다. 수능시험은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었다. 바로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컴퓨터보다 점자정보단말기(정보 입출력을 점자로 할 수 있는 보조기기)로 시험 보기를 원했다. 수학영역 때문이었다. 수학 문제는 기호가 많아 컴퓨터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문제를 풀려면 중간 계산식을 점자로 적고 확인해야 하는데 점자정보단말기가 가장 유용했다. 그런데 수능시험에서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쓰지 못해 학생들은 수학 문제를 암산으로 푼다고 하였다. 하지만 점자정보단말기를 시험에 도입하기에는 큰 걸림돌이 있었다. 무선 인터넷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시험에는 인터넷 기능이 없는 별도의 기기가 필요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보조기기 사용을 방해하는 행위를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수능시험에서 보조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차별이었다. 하지만 예산과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소송으로 다투기 쉽지 않았다. 정책 개선을 촉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또 다른 고1 학생들이 찾아왔다. 시각장애 학생 2명과 그 친구인 비장애 학생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시각장애학생 수능시험 차별 증언대회를 열고 정책 개선을 촉구했다.

문제제기를 받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호의적이었다. 이미 컴퓨터는 도입을 준비하고 있었고, 점자정보단말기도 도입을 위해 연구하겠다고 했다. 그 결과 컴퓨터는 2014년에 도입되었고, 점자정보단말기는 2015년 수학영역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모든 영역에 도입되었다. 이 문제를 제기했던 2013년 고1이던 학생들은 2015년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생이 되었다. 이 학생들이 없었다면 지금도 수능시험에서 점자정보단말기가 쓰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교육당국이 모든 학생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에 맞는 편의를 제공하는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김재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