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소중한 고객이다
인간생활영역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소비영역이다. 그렇다 보니 소비자로서 정당한 대우에 대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고, 소비자로서의 권리 보장에 대한 목소리와 제도적 장치도 많이 마련되고 있다.
때로는 이것이 도를 넘어서 소비자 ‘갑질’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나, 장애인은 내 돈을 들고 소비하겠다고 해도 갑이 아니라 여전히 ‘을’ 또는 그도 못한 ‘병’, ‘정’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절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에 소비영역에서의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을 담게 되었다.
전동휠체어 장애인도 소중한 고객이다
지난해 한 키즈카페에서 휠체어를 탑승한 아동이 출입을 저지당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밖에서 타고 다니던 휠체어로 “바닥이 더러워진다”는 이유였는데, 보호자가 휠체어 이용 바퀴를 닦고 들어가겠다고 했음에도 “아동을 안고 다닐 때에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용거부는 대개 휠체어 또는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게 많이 발생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 혹은 “공간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다. 비장애인 눈에는 전동휠체어가 그냥 탈 것으로 보일 수 있을지라도 장애인에게는 신체 일부다. 신체 일부를 밖에다 두고 올 수도 없으니 장애인은 이용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애인도 엄연히 한 명의 소중한 고객이다. 물건을 안 팔겠다고 하는 것은 주인장 마음일 수는 있으나, 과거부터 장애인을 소비능력을 가진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들이 무수히 많다 보니,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다른 이유 빼고 장애를 이유로는 재화용역제공을 거부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정말로 안 된다고 한다면, 그 사유를 명확히 물어보고 정말로 ‘휠체어 바퀴를 돌릴 수 없을 만큼 공간이 부족한지’, 다른 사람에게 무리가 간다면 ‘무리가 가지 않도록 동선을 안내해 줄 수 있지 않냐’고 온유하지만 당당하게 따져물어도 된다.
그에 대한 시도나 노력 없이 출입이나 이용을 제지한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5조 제2항 장애인이 해당 재화・용역 등을 이용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기회를 박탈하는 차별에 해당한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거부해서는 안 된다
삶의 질이 향상됨에 따라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다양한 취미 레저 활동에 도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증대되고 있다. 이제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가만히 집 안에서 ‘방콕’하며 지내지 않으며, 친구・가족・연인과 어울려 또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취미와 레저 활동에 참여한다.
그런데 그런 장애인의 욕구와 달리 늘 걸림돌이 존재한다. 그 걸림돌은 항상 ‘위험’,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다가온다. 놀이기구 탑승이 대표적 사례다. 시각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이 동행자와 놀이기구를 탑승하려고만 하면 ‘장애’ 혹은 ‘장애등급’을 기준으로 ‘위험하다’며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
안전사고로부터 소비자의 위험을 방지해야 하는 것은 제공자의 의무이긴 한데, 모든 사람은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가지기 때문에 놀이기구 탑승 시 일단 제지를 당하게 되면 어떠한 사유이던 기분이 상하고, 심하면 인격을 모욕당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놀이기구 탑승만이 아니라 최근에는 볼링장, 헬스장, 사우나 시설 등에서 종종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
그런데 모든 제한이 차별이라고 볼 수도 없고, 또 차별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조치들이 장애인에게 위험하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위하는 조치로 합리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의사에 모두 맡기는 것이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시설관리자의 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위험은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그렇기에 정말로 해당 시설을 이용함에 있어 특정 장애로 인해 소비자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나 건강이나 안전에 무리를 줄 수 있는지, 만약에 발생할 안전사고 시 구조 등이 가능한지 등에 대한 구체적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도 중요하나 생명이나 안전과 맞바꿀 수는 없는 일이므로 이러한 제한이 합리적 사유일 때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동행인 없이 목욕탕을 이용하고자 했던 시각장애인을 거부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시각장애인이 놀이기구의 일종인 범퍼카 탑승을 거부한 것에 대해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 사람의 장애 특성과 시설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봤을 때 위험할 수 있으며,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시설여건상 혹은 시설특성상 인적 편의 제공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 다만 무조건 거부되어서는 안 되며, 장애인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과 안내는 반드시 필요하다.
실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수준의 서비스 제공도 차별이다
고용이나 교육영역에서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이 명문화돼 있다. 그런데 재화・용역 영역에는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구체적 문구가 없다. 다만 ‘실질적으로 비장애인과 동등하지 않은 서비스 수준으로 제공되는 경우’를 또 하나의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비장애인과 동등하지 않은 서비스 수준’이라 함은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용료를 더 요구하는 경우나 서비스 질을 낮게 주는 경우는 당연히 여기에 해당할 수 있지만, 이 규정은 사실상 재화용역에서도 정당한 편의 제공을 규정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연티켓을 예매함에 있어 비장애인과 동등한 서비스 수준으로 공연티켓을 온라인으로 예매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나, 비장애인에게 인터넷 금융거래나 ATM기기 이용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시・청각장애인에게도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하고,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할인티켓의 예매 및 판매 정책은 차별이 아니다
그러나 차별인지 아닌지 구분이 쉽지 않은 사건도 있다. 바로 장애인 할인티켓에 대한 예매방법인데, 장애인 입장에서는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예매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의외로 장애인 할인티켓은 온라인 예매를 제한하고 전화예매나 현장예매만 가능한 경우들이 있어서 장애인 차별 진정이 제기되곤 한다.
대개 이런 티켓은 장애인 좌석 또는 휠체어 좌석의 경우들인데, 인터넷 예매를 가능하게 할 경우 현재로서는 장애인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 관람객이 좌석을 선점했을 때 진짜 그 좌석이 필요한 휠체어 장애인의 이용을 제한하는 부당한 일이 발생하기에 이 경우는 합리적 사유가 있다고 본다. 또는 청소년이나 국가유공자 등 문화소외계층을 위해 발급한 할인티켓의 경우 동일하게 인터넷 예매를 제한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엄격히 말하면 할인티켓 판매 정책이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소비자를 위한 알권리… 현실적 장벽이 있다
장애차별조사관으로서 동등한 서비스에 대한 고민이 되는 영역이 있다. 재화를 구입할 때 재화에 대한 정보가 점자나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가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다는 시각장애인의 진정이 제기되는 경우다.
시각장애를 갖지 않은 비장애인에게는 구입해야 하는 물건에 대한 정보를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나 시각장애인은 재화에 대한 정보나 사용법에 대해 도통 확인할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소비자로서의 알권리를 침해받는다는 인식을 갖기 충분하다. 일본을 비롯해 일부 선진국에서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식음료 등에 점자표기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기나 QR코드조차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 또는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를 표기하게 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포장을 새로 개발해야 하고, 제품공정과정 등을 모두 변경해야 하는데 대량생산체제에서 기존 것을 모두 교체하라고 하는 것이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과도한 부담이 될 소지가 크며, 개발비용이나 제품생산 비용을 감수하는 선량한 기업은 드물다. 결국 소비자들이 그 비용을 나눠 부담하는 격이기에 제품 생산단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시각장애인 소비자의 편을 들어주고 싶으나 차별로까지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재로서는 기업이 제품 포장 등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신제품 생산 시에 자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인데, 일본의 경우 이러한 디자인 개발에 국가가 일정 정도 지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도 그러한 계기가 있길 기다려 본다.
장애인 소비자도 합리적 사고는 필요하다
고용이나 교육 영역과는 달리 재화 및 용역 영역에서는 정당한 편의 제공이 구체화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정당한 편의 제공을 명문화할 경우 시장이 떠안게 되는 부담, 즉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 그리고 소상공인들, 자영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애인 당사자들도 동등한 소비자로서 장애를 이유로 제한 ・ 배제 ・ 분리 ・ 거부 시에는 따져 물어야 할 일이지만, 정당한 편의 제공에 있어서는 과연 재화용역을 제공하는 측이 그것을 제공할 만큼의 능력이 되는 사업장인지, 또 그러한 품목인지를 고려하는 합리적 사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