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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뉴스클리핑 - 롯데리아 키오스크 시각장애인 이용 불가

작성자담당자

작성일시2018-06-26 오전 9: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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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리아 키오스크 시각장애인 이용 불가
"버거 하나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비참한 것인가"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6-15 09:17:52
어느 롯데리아 매장의 키오스크 전경. ⓒ서인환
▲어느 롯데리아 매장의 키오스크 전경. ⓒ서인환
나는 수원에 있는 한 장애인단체에 강의가 있어 혹시 시간에 늦을까 하여 서두르다 보니 점심을 먹지 못했다. 한 끼 정도야 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적당한 식사를 하려고 생각했다.

지방 대학에 강의를 하러 가거나 지역 장애인단체와 교류를 위해 출장을 갈 경우 고속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에는 항상 맥도날드나 롯데리아가 있어 나는 식사를 여기에서 자주 해결하곤 했었다. 나에게 빵은 즐거움이고 낭만이었다.

내가 롯데리아를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는 테이크아웃으로 음식을 사서 기차 내에서 먹을 경우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둘째는 가격이 식사보다 저렴하게 들어서이다. 특히나 이러한 간편 식사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음료수와 새우버거를 별미로 즐겨 먹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깔끔하게 잘 먹지 못하여 여러 가지 식재료들이 층층이 있는 햄버거의 경우 옷을 더럽히거나 흘러내려서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들기 쉽고, 나는 고기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새우버거는 별도의 도핑 식재료도 없고 크기고 작아 먹기에도 편리하여 선호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새우버거를 먹을 수 있는 것을 행운 또는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수원역에서 기차표를 사기 전에 롯데리아부터 찾았다. 롯데리아는 간판이 구석진 곳에 있어 나는 역사 내를 한 바퀴 돌면서 탐색해야 했다. 그래도 결국 찾았다는 것이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카운터 앞으로 나아가 판매원에게 새우버거 세트를 사겠다고 말을 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자 판매원은 카드는 자동판매기를 이용해 달라고 말했다. 전에는 내가 현금으로 구입을 하여 그러한 기계가 있는 줄을 몰랐다.

키오스크는 오래 전부터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나는 여러 제품의 광고판이라 생각하고 무관심했었던 것 같다. 현금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지만 카드 사용자는 키오스크를 이용해서 자동 주문을 해야 했다. 맥도날드가 키오스크 주문 방식으로 바뀌고 나는 맥도날드와 결별했다. 내가 제대로 주문을 할 수 없으니 그 좋아하는 빵을 내 인생에서 지워야 했다.

나는 현금이 없었다. 스마트폰에 교통카드 앱이 있으니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데에 현금이 필요 없고, 요즘 카카오톡에 있는 카카오머니에 충전을 해 두면 송금이나 결재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서 수수료도 무료이니 현금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다만 스마트폰이 방전되는 경우 등 비상시를 고려하여 직불카드는 가지고 다녔다.

맥도날드처럼 이제 롯데리아와도 결별을 해야 하나? 마치 암선고를 받고 금기시키는 음식을 두고 결별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내 인생에서 새우버거는 영원히 끝이구나! 지난번에 먹었던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하찮은 음식 하나를 두고 마치 생을 마감하는 비정한 심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다. 판매원에게 시각장애인임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해 보기로 했다.

그러자 판매대 건너편에서 매우 바쁘게 주문 대기번호를 불러대는 판매원은 판매대를 건너와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대기번호를 부르며 주문한 음식을 찾아가라고 손님을 향해 소리치며 너무나 바빴다.

그래도 새우버거를 한번 먹어 보고자 하는 욕망과 배고픔, 내 인생에서 하나씩 할 수 없거나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가는 것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인 것 같은 우울함이 들어, 나는 용기를 내어 보았다.

나는 키오스크 앞에 늘어선 줄에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먼저 돋보기를 대고 키오스크를 살피기 시작했다. 바코드라고 쓰인 곳이 있었다. 여기는 상품권이나 구입한 영수증의 바코드를 인식시켜 주문을 하거나 주문을 한 것을 취소하는 곳이라 여겼다.

그 옆에는 영수증이 나오는 곳이라는 글이 있었다. 그러면 메뉴를 선택하고 카드를 넣는 곳만 찾으면 이용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무리 찾아도 카드 투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카드 투입구는 기게 오른편에 벽걸이처럼 걸려 있었다.

카드 투입구가 아니라 카드 단말기였다. 키오스크 기계와 일체형으로 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별도의 카드 단말기가 있었던 것인데, 나는 기게 모양만 살피고 옆은 보지 않았으니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돋보기로 확대는 해도 시야를 넓혀 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먼저 메뉴를 고르고 결제 과정에서 카드를 투입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현금 인출기에 익숙한 나머지 카드부터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투입구만 열심히 찾았다. 결국 영수증 나오는 곳에 카드를 강제로 밀어 넣어 보기도 하고, 영수증 나오는 곳의 바로 상부의 틈새에다가 카드를 밀어 넣어 보기도 하다가 들어가지 않는 것을 알고는 키오스크를 이용한 주문을 포기해야 했다.

줄을 선 사람들 틈에서 도대체 뭐야? 하는 짜증스런 원망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더 이상 키오스크 탐색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나는 버거 하나도 살 수 없는 사람이구나’하는 비애감이 몰려왔다.

명색이 그래도 내가 장애인 관련 컴퓨터나 정보에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 사람이라 자부했고, 시각장애인의 접근권이나 모바일 앱을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웠다. 키오스크 하나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 말이다.

늦은 저녁이라 그렇다고 굶을 수는 없었다. 나는 롯데리아에서 도망치듯이 나와 옆집 가게인 편의점에 가서 빵과 음료를 샀다. 그리고 기차를 기다리며 빵을 먹었다. 전에는 내가 여행을 하면서 즐기는 빵이었는데, 오늘은 초라하게 허겁지겁 빵을 먹는 신세로 느껴졌다.

촉촉한 빵이 눈물 젖은 빵처럼 느껴지자 나는 입맛을 잃어버렸다. 빵돌이인 내가 두 개의 빵을 사서는 한 개도 다 먹지 못했다. 오늘은 음료수마저 너무나 쓴 맛이었다.

나는 근거지를 잃고 거리로 내몰려 떠도는 이방인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밑바닥 인생이 되어 주변인으로 내몰리는 기분을 절감했다. 쉽게 이용하도록 디자인이 되었거나 음성안내가 있었다면 나는 롯데리아의 자부심을 가진 행복한 고객이었을 것인데, 이용을 할 수 없으니 무시당한 무능력자가 되었다.

그까짓 버거 하나가 무엇이기에 내가 이토록 비참한 것인가! 이제 버거 하나 주문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보니 쥐구멍을 찾아 숨어야 하는 기분이 들었고, 세상에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화가 치밀기도 했다. 에그 않느니 죽어야지! 이제 나도 쓸모없어진 존재구나!

교회 밖에서 찬송가를 들으며 고향을 생각하던 흑인 노예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시각장애인이 갈 수 없는 나라가 4차 산업사회인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에 나오는 철거민이 쫓겨난 도시문화가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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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서인환 (rtech@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