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N, 14년 동안 동거해 온 "NEXT"와 결별하다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회장 이병돈, 이하 한시련)는 시각장애인들의 TV 시·청취에 "Next"라는 말이 장애물로 등장해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걷어내고 TV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들을 시각장애인들도 알 수 있도록 다른 방송사들처럼 KBSN도 다음 프로그램 안내를 음성으로 고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 방송사들은 정해진 편성표에 따라 프로그램을 방영하는데, 하나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음 송출될 방송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고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상파의 경우 KBS2 TV, MBC TV, SBS TV등이 “곧이어 *****가 방송됩니다."라고 자막과 함께 친절하게 다음 프로그램 안내를 음성으로 고지해 주고 있다.
또한 개국 후 줄곧 친절하게 초심을 잃지 않고 다음 프로그램을 음성으로 안내하는 종편채널들도 있다. CBS, TV조선, MBN, YTN, JTBC 등 대다수의 종편 방송사, 케이블 방송사들이다. 이들 종편채널은 방영할 프로그램을 음성으로 고지해 주고 짬짬이 프로그램 광고 때엔 방영시간까지도 친절하게 안내하는 센스를 보여주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방송 시·청취 시에 느낄 수 있는 고마운 채널들이다.
그러나,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1 TV와 자회사가 운영하는 각종 스포츠 드라마 뉴스 채널들은 다음 방송될 프로그램에 대해 아무런 공지를 하지 않거나 "NEXT"라는 짧은 멘트와 함께 프로그램 명칭은 자막으로 처리한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롯이 소리에 의존하며 TV를 접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순간 답답해지고 다음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약 2~3분 전까지는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처하고 만다.
그런데 드디어 KBSN 스포츠채널이 지난 4월부터 시각장애인을 향해 "Next" 플레이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시련의 면담 요청에 극적으로 응한 KBSN 이준용 대표와 스포츠 제작국장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다.
KBSN 스포츠채널은 빠른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시련 면담 과정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 다소 난색을 표했으나 면담 며칠이 지난 후부터 방영프로그램 음성안내 삽입을 급격히 늘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당초 6월 말까지 60% 전후로 방영프로그램 음성안내 삽입을 늘릴 거라던 계획을 수정, 속도를 높여 훨씬 많은 방영 프로그램들에 음성안내를 삽입하더니 중대한 변화를 단행했다. 14년 동안 동거해 왔던 "Next"와 결별한 것이다. 7월의 문을 열자 KBSN 스포츠채널은 시각장애인들이 TV를 켜서 듣기만 해도 진저리치게 했던 "Next"를 없애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단장해 방영프로그램 100% 음성안내 삽입을 단행하였다.
이에 KBSN 이준용 대표는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의 TV 시·청취의 불편함을 간과했다."며 이에 적극 협조할 것을 한시련 면담 대표자들에게 약속했다. 함께 동석했던 스포츠 제작국장 역시 "시각장애인들이 TV를 많이 시청할 거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는데 준비한 동영상 자료를 보니 우리 방송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 후, 올해 그 비중을 최대한 늘려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이제 KBSN 스포츠채널을 시작으로 시각장애인의 방송 시·청취 불편 개선 모범사례를 적용, 이를 벤치마킹해 KBSN 드라마, 예능 채널 등 전 채널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걸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이준용 대표의 말에서 강한 실천 의지를 감지할 수 있다. "내가 눈이 피곤해 등을 돌려 TV 시청을 하던 중 어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지를 확인하려면 'Next' 음성을 들은 후 감고 있던 눈 뜨고, 등 돌리면 확인이 가능한 건데 시각장애인들은 평생 이걸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각장애인 여러분이 TV를 시청할 때 이런 불편과 어려움이 있을 줄은 미처 깨닫지 못해 방송 제작에 이를 반영하는 걸 간과했는데 앞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방송 시·청취 불편개선을 적극 돕겠다."고 면담 석상에서 밝힌 바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준용 대표는 허언이 아닌 실천의 강도를 높이더니 "Next"를 걷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결별을 선택하는 단호한 실천 의지를 보여주었다.
시각장애인들은 방송사들의 두 눈을 본다. 시각장애인 시청자들에게 해 줄 일을 찾으려는 눈이거나 귀찮으니 안 보려 하고 피하려는 눈이다. 지금 KBSN 제작진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품은 첫 번째 눈으로 시각장애인의 방송 시·청취 불편을 덜어주고자 더 크게 눈을 뜨려 하고 있다.
50만 대한민국 시각장애인의 TV 방송 시·청취 불편 장애를 걷어내는 날. 대한민국 TV 방송은 우리 한시련이 표방하는 "문화 향유는 안방에서부터 실현"을 온 몸으로 느낄 그 날이 오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2017년 7월 28일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