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장애인은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었을까요?
이번 흰 지팡이 발자취에서는 과거사회의 장애인의 삶에 집중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중세유럽에서는 장애인이 신에게 벌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장애인에게 고문을 가하거나
심지어는 처형을 했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장애인에게 잔혹한 처사가 자행되었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장애를 질병의 일환으로 여겨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는데요.
장애인과 그 부양자에게는 각종 부역과 잡역을 면제했으며 장애인을 정성껏 보살핀 가족에게는 표창을 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학대한 자에게는 가중처벌을 하는 엄벌제도를 실시했습니다.
또한 장애인을 무고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면 해당 고을의 읍호를 강등시키는 등
장애인에 대해서는 선진적인 복지정책을 실시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결과 많은 장애인이 사회에 진출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광해군 시절 이람과 원욱은 두 사람 모두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었으나 같은 처지에 놓인
서로를 의지하며 학문에 열중하여 두 사람 모두 과거에 급제해 능력을 펼쳤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유팽로 역시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군을 막기 위해 의병장으로 앞장서다가 의롭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척추장애인이었던 허조는 조선 건국 이후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워 좌의정에 올랐으며
간질장애인이었던 권균은 성종, 연산군, 중종 세 임금을 모시면서 형조판서,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지체장애인이었던 심희수는 우의정, 좌의정을 맡았으며 청각장애인 이덕수는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문신으로
영조의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특히 조선시대에서도 18세기 르네상스를 만들어낸 정조는 개혁을 통해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군주로서
효, 복지, 인권을 강조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정조는 장애여부를 가리지 않고 능력을 중시하여 장애인의 사회 진출을 활발하게 이끌어 내고자 했으며 장애인정책에 관해서도 조정에 명을 내려 장애인 단체를 설립할 것을 명령하였고
장애인 지원정책도 마련하했습니다.
이처럼 과거 조선시대에서는 장애인의 인권을 고려하여 장애여부를 떠나 장애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역사학자 E. H. Carr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여 발전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
이라는 뜻인데요. 우리 사회 역시 과거의 장애인 역사를 되돌아보고 반영할 것은 반영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며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차별없이 더불어 삶을 위해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 속의 장애 인물 한국장애인사』(정창권 외 3명)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