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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솔빛 - [163호]금각사를 찾아서 / 서해웅(시각장애1급)

작성자담당자

작성일시2014-02-17 오전 10: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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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를 찾아서 

서해웅(시각장애1급 / 서울시 은평구)

 

“서른이 되기 전에 꼭 한번 나가보고 싶었어”

교토로 가는 급행열차 안에서 문득 친구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이제 곧 서른이 된다.

여행은 고사하고 아직 비행기도 제대로 한번 타 보지 못했었다. 혼자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마다

‘내가 혼자서 어딜 가?’라는 물음이 밀물처럼 차올랐다.

 

시각장애인이 여행을 가면 보지도 못할 텐데 푸념하며 주변에 여행가는 시각장애친구들을 비난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사실 나도 정말 해외로 나가 보고 싶었다. 해외여행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나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나에게 해외여행은 벽처럼 느껴졌다.

 

1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던 친구는 일본어에 능숙했다. 이 친구와 함께 간다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용기를 내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했다. 실은 결정한 후에도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래서 얼른 비행기 표를 예약해 버렸다.

 

교토 금각사 전경

 

처음에는 도쿄로 가기로 했다가 다시금 교토로 여행지를 바꾸었다.

도쿄야 서울이랑 별로 다를 게 없고 교토가 좀 더 일본다운 곳이라는 친구의 말에 교토로 방향을 잡았다.

교토는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경주와 비슷한 곳이다. 경주에 절과 탑이 많듯이 교토에는 유명한 금각사가 있었다.

 

교토역에 내려 숙소까지 다시 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우리가 오후 6시 정도에 도착했는데 교토에 있는 절은 보통 6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얼른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에 있는 ‘키아즈미데라’라는 절로 올라갔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내일을 기약하며 저벅저벅 언덕을 내려오던 친구가 갑자기 멈춰 섰다.

 

친구는 내 몸을 잡고 방향을 잡아 주었다. “좀 더 멀리, 아주 멀리 봐야 해” 친구가 말했다.

친구가 가리킨 것을 보는 순간 아주 낮게 탄성이 나왔다. 그 순간 나는 두 번 감사했다. 내 눈은 시력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눈이 나빠졌다는 것을 하루 이틀 사이에 느낄 수 없지만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 준 대자연에 감사했다.

 

둘째 날 우리는 서둘러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왔다. 말 그대로 자유여행이었다. 버스에 탔다.

자리에 앉아 한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차 시동이 꺼졌다. 일본에서는 공회전 시간이 길 때 시동을 끄는 것을 친구가 알려줬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다. 여행이란 이런 맛에 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고 호기심도 왕성해진다.

나는 친구가 귀찮을 정도로 이것저것 묻고 저 사람들은 뭐라고 하는 거냐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내가 평생을 살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나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더욱 뜻 깊다. 출국할 때는 친구와 함께 떠났지만 돌아올 때는 나 혼자 입국했다.

일부러 친구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비행기 표를 예매할 때 내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언젠가는 나 혼자서 나가보고 싶어 그래서 이번에는 나 혼자 돌아와 볼 거야” 돌아오는 길은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승무원이 잘 도와주어 어렵지 않게 입국을 할 수 있었다.

서울로 오는 공항철도에 탔을 때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나는 잠깐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