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대화’ 전시 체험 후기 - 연순자(서울시 종로구)
※ ‘어둠 속의 대화’는 암흑 속을 걷는 체험형 전시입니다. 로드마스터라는 가이드의 인솔 하에 어둠 속을 걸으며 시각장애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시각장애 자녀를 둔 연순자 씨가 ‘어둠 속의 대화’를 체험하고 느낀 바를 적은 글입니다.
한 줄기, 아니 한 점의 빛도 없는 곳! 어둠 속에서 로드마스터의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에 이끌려 눈을 감고 1시간 남짓 더듬어 가며 가슴으로 느끼고 촉감으로 세상을 더듬어 보았다.
손으로 짚는 벽돌담은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었고 나무로 된 벽은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또 숲으로 된 공간에서 나무를 만졌는데 약간 차가운 느낌이었다. 살아있는 나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촉이 약간 차다는 사실을 난생 처음 알았다.
이곳에서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부터 처음 가는 곳에서는 소리 나는 쪽으로 가서 만져보고 들어보고 식당에 외식하러 가면 심지어 주방까지 가서 냉장고도 만져보고 소리도 들어보던 아들이었다. 남의 집에 가면 구석진 곳까지 가서 만져보고 집을 여기저기 다 만져봐서 시각장애 아들을 데리고 외식을 하거나 남의 집에 가면 어려웠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때는 왜 이리 산만하게 가만히 있지를 못하냐며 아이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던 것을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어둠 속의 대화'를 체험함으로써 아들의 어렸을 때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만져 보고 더듬어 보는 것은 산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는 당연한 호기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바늘구멍만한 빛도 없는 곳에서 나는 다시 눈을 감고 갔다. 어렸을 때 우리 아이가 “지하철 안내 방송하는 여자하고 결혼할거야”라고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목소리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나름대로 이미지화 했던 것 같다. 앞으로 나도 목소리 관리를 해야겠다. 좀 더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암흑 속에서 로드마스터만 믿고 1시간 동안 의지하여 체험을 마쳤다. 그 암흑 속에서 로드마스터는 원적외선 안경을 착용한 정안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체험을 마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를 안내해주었던 로드마스터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목소리 하나로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면 목소리는 또 하나의 인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으니 다른 감각들이 작동하고 느껴지고 마음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의 대화를 미리 체험했었더라면 시각장애 아이를 더 잘 이해하고 잘 키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각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라면 꼭 어둠 속의 대화를 체험하시길 권한다. 우리 아이들을 더 잘 키울 수 있는 노하우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