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214호 2025. 8. 발행처: 문화체육관광부 www.mcst.go.kr 발행일: 2025. 8. 1. 제작협력: (주)도서출판 점자 www.kbraille.net 문의: 02-3426-7511, 044-203-3012 음성 사서함: 02-2092-9000 (7511) 이 책자에 수록된 내용은 정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손끝으로 읽는 국정 차례 그곳에 가면: 방화수류정 4 아름다운 사람: 체험형 전시 ‘어둠속의대화’ 운영하는 엔비전스 송영희 씨 8 알짬 정보: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개최 등 23 공감 정책 I: 전 국민에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한다 34 공감 정책 II: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 41 공감 현장: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앵커 노희지 씨 51 특집: 광복 80주년, 새로운 역사의 꽃 피어나다 66 김예원 변호사의 쉽고 재미있는 형사사법: 사례를 통한 수사 진행 과정을 알아봅시다 77 살며 생각하며: 아욱된장국 속의 안도 85 그곳에 가면 방화수류정 경기도 수원에 있는 방화수류정은 조선 정조 18년(1794)에 건립된 것으로, 수원화성에 있는 누각 중 하나다. 화성 북수문인 화홍문의 동측 구릉 정상에 있으며,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됐다. 동북각루가 공식 명칭이긴 하나 송나라 정명도의 시 ‘운담풍경근오천, 방화수류과전천(구름 개어 맑은 바람 부는 한낮 꽃 찾아 나선 길, 버드나무 따라 앞 개울가를 지나네)’에서 따왔다.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수원화성에서 가장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주변 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방화수류정 아래에는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완만하고 부드러운 잔디밭에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즐긴다. 주차 공간이 비교적 넓고 휠체어나 유아차 이용객을 위한 편의시설 또한 잘 구비되어 있다. 한편 수원화성의 주된 관광 포인트를 순환하는 ‘화성어차’도 타보길 권한다. 순종이 타던 자동차와 조선시대 국왕의 가마를 모티브로 제작하였는데 연무대에서 출발하여 수원화성의 주요 군사시설을 둘러본 뒤 연무대로 돌아오는 코스로 운영된다. 방화수류정 - 위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392번길 44-6 - 문의: 031-290-3600 화성어차 - 위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103번길 8 - 문의: 031-228-4686 아름다운 사람 체험형 전시 ‘어둠속의대화’ 운영하는 엔비전스 송영희 씨 - “시각 아닌 다른 감각과 무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문화 체험해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 같은 깊은 바닷속에도 수많은 소리들이 존재하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체험형 전시 ‘어둠속의대화’를 소개하는 문구다. 이곳에 온 관람객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100분간 만지고 느끼며 체험한다. 2007년 처음 이 전시를 체험하고 흠뻑 빠져들어 직접 전시 운영을 하게 됐다는 엔비전스 송영희 씨는 “단순 장애 체험이 아닌, 소통 방식을 바꾸는 문화 체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둠속의대화’는 서울시 북촌, 경기도 동탄에서 운영 중이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A. 안녕하세요? ‘어둠속의대화’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엔비전스의 대표 송영희입니다. 엔비전스는 전 세계 25개국 31개 도시에서 진행 중인 ‘어둠속의대화’의 한국 전시를 맡고 있어요. 또한 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정보 접근성 컨설팅 사업도 아우르고 있습니다. 전체 50여 명 직원 중 시각장애인이 60% 이상을 차지합니다. 시각장애가 있는 당사자가 전문성을 살려 주도적으로 업무에 참여하고, 직업적 성취를 얻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사회 전반에 장애 인식 개선이 이뤄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Q. ‘어둠속의대화’를 직접 체험한 뒤 운영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A. 그렇습니다. 저는 19살 때 시력을 잃었습니다. 미대 진학을 꿈꾸던 학창 시절부터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까지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을 모두 경험하면서 깊은 좌절을 맛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저는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다 장애인고용공단이 주도한 컴퓨터 속기사 양성 사업에 참여, 전문 속기사 자격을 취득해 속기사무소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 단기 전시로 시작된 ‘어둠속의대화’를 우연히 관람한 후 전시를 주관한 공연 기획 회사에 입사, 전시 가이드와 인사 관리를 맡았습니다. 회사가 경영난으로 폐업했지만 전시를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이 전시를 계속 이어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 설립 형태의 투자를 여러 기업에 제안했고, 마침내 2009년 네이버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 엔비전스를 설립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적자를 볼 정도로 어려웠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관람 예약이 가득 차게 되었어요. Q. 직원의 전문성 확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고 들었어요. A. 엔비전스는 명확한 직업 모델 및 사업을 통해 일반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도록 운영하고 있어요. 직원들은 전시 로드마스터와 디지털 정보 접근성 테스트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단순 장애인 고용을 넘어, 전문성을 키워나가고 있죠. 전시 로드마스터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관람객이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다양한 테마를 체험하도록 안내합니다. 어둠이라는 이색적인 공간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타인과 진정으로 소통하면서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는 매개자 역할을 하죠. 이것은 전시 로드마스터에게 직업적 성취는 물론 자신감과 효능감을 안겨줍니다. 시각적 한계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했던 장애인이 전시 운영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정보 접근성 테스트 엔지니어 역시 신체적 장애를 넘어 재능과 전문성을 자유롭게 발휘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더 큰 성장 가능성을 갖춘 직업 모델로 자리 잡고 있어요. 엔비전스는 네이버를 비롯해 토스뱅크, 토스증권, G마켓 등 다양한 기업에 접근성 컨설팅 업무를 수행 중이며, 신사업 진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Q. 전시장이 서울과 동탄 두 곳인데요, 각 지점에 대해 알려주세요. A. 서울 북촌점은 2014년 개장했고 경기 동탄점은 2021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북촌점은 ‘어둠속의대화’가 처음 시작된 독일의 오리지널 콘셉트에 한국적 정서를 담았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 속 풍경을 어둠 속에 구현했지요. 동탄점은 어둠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살려 상상을 극대화한 콘셉트로 구성했어요. 익숙한 일상을 꿈과 동화 같은 비현실적 스토리로 풀어낸 것이 특징입니다. 현재 120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어둠속의대화’를 체험했고 그중 상당수가 재방문자입니다. 관람 경험을 가족, 친구, 동료와 적극 공유하고 싶어 하죠. 앞으로도 다양한 연령과 방문 목적에 따라 지점을 방문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전시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요. A. ‘어둠속의대화’는 전시장 내부와 전시 로드마스터 모두 비공개로 운영됩니다. 전시장을 공개하거나 전시 로드마스터가 노출되면 고유한 상상이 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차례 방문한 관람객들도 매번 다른 에피소드를 겪곤 해요. 이를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유해 ‘당신도 100분간의 특별한 경험을 해 보세요’ 같은 메시지를 남깁니다. 무척 감사한 일이지요. 보통 어둠은 소통의 차단과 직결됩니다. 이는 눈으로 보이는 타인의 외모, 나이, 성별, 신체적 특성이 소통의 판단 요소가 된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처음 어둠 속에 들어설 때 불편함, 공포, 두려움, 경계심 등 부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감정을 호기심, 관심, 이해, 편안함과 같은 긍정적 감정으로 변화시키는 게 전시가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Q. 힘든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이윤 창출 노력을 꾸준히 이어가야 합니다. 엔비전스 또한 시각장애인의 직업 영역 개발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익적 목표와 민간기업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영리 목적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공적 지원이나 외부 지원에 의존한다는 시선을 받기도 해요. 코로나 팬데믹 당시 생존을 위해 벌였던 노력조차 오해받는 경우가 있었죠. 엔비전스가 운영하는 사업과 직무가 단순한 동정이 아닌 일반적 직업으로서 동등하게 평가받길 바랍니다. 이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생존하고 성장한다는 설립 목표에 기반한 거예요. 시각장애인의 직업 및 직무 역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최근 주한독일상공회의소와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A. 그렇습니다.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와는 오래전부터 시각장애인의 복지 증진 및 인식 개선을 위해 협력하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흰지팡이의 날 행사 준비위원회를 맡아 행사의 모든 과정을 함께 준비했지요. 주한독일상공회의소도 매년 흰지팡이의 날 행사를 적극 후원하고 성공적 행사 진행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에 보다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더 많은 민간기업이 이러한 사회적 지원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고자 MOU를 체결했습니다. Q. 향후 이루고 싶은 꿈, 바라는 목표를 알려주세요. A.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지원과 복지뿐 아니라 생산적 영역에서 다양한 직업 선택권과 재능을 발굴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직업 모델로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 또한 필요합니다. ‘어둠속의대화’ 전시와 디지털 정보 접근성 컨설팅 사업을 계속 성장시키고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직업 모델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장애가 결함이 아닌 강점으로 발현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내고 싶어요. 이를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은 신규 직업 모델 개발에 앞장설 것입니다. 잠재된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경험을 희망하는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우리 회사의 다양한 직무에 참여하길 바랍니다. 그들이 일 자체에 재미와 보람을 느껴 직업적 성취를 얻길 희망합니다. 〈박스 기사〉 ‘어둠속의대화’ 198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박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35년간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32개국 160여 개 지역에서 1,2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했다. 우리나라는 2010년 신촌에 전 세계 10번째 상설전시장이 처음 오픈됐고, 2014년 북촌으로 이전해 운영되었다. 2021년에는 동탄에 제2 상설전시장이 오픈되었다. 현재 북촌점은 ‘회상 기억 그리고 추억의 전람’의 테마로, 동탄점은 ‘상상, 그 이상을 보다’의 테마로 운영 중이다. 북촌점 위치: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71 동탄점 위치: 경기도 화성시 동탄역로 160(오산동) 롯데백화점 7층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까지(매주 월·화요일 정기 휴무) 이용 문의: 1877-6145 김수정·신혜령 기자 알짬 정보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개최 등 01.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개최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가 8월 11일부터 17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 이음아트홀에서 진행된다. 대한민국장애인무용제는 장애인 무용예술가 및 공연예술가 간의 초국가적 협업을 시도해 상호이해를 높이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세계인의 장애인 무용 축제를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올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만, 독일, 스페인, 이스라엘, 인도, 일본, 영국, 캐나다, 홍콩 등 10개국의 장애무용 단체들이 참여한다. 국내기획작 3편, 국내공모작 6편, 해외초청작 7편 등 총 16개 작품이 오르며, 국내 참여 단체는 A.R.A, 룩스빛아트컴퍼니, 드림온무용단, 퍼포밍아트더몸, 한국파릇하우스 PH MOVE, 수아트컴퍼니이다. 문의 02-309-7922 02. 한국장애인재단, ‘2025 장애 공감 공모전’ 개최 한국장애인재단이 8월 12일까지 ‘2025 장애 공감 공모전’을 연다. 이 공모전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이고자 마련됐다. 공모 부문은 영상(쇼츠)·포스터·웹툰·라디오 총 4개 부문이며, 개인 또는 팀으로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단 공모전 누리집(https://contest.kfpd.org)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수상작은 심사를 거쳐 총 37팀이 선정될 예정이며, 대상(보건복지부장관상) 200만 원, 최우수상 100만 원, 특별상 및 각 부문별 우수상 50만 원, 입상 2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선정된 수상작은 장애 공감 콘텐츠 및 홍보용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문의 02-6399-6237 03. 첫 소설집 낸 시각장애인 조승리 씨 본지 칼럼니스트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 중인 작가 조승리 씨가 첫 소설집 ‘나의 어린 어둠’(다산북스)을 출간했다. 이 책은 실명을 앞둔 청소년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네 편의 연작소설과 창작기를 담은 에세이 한 편으로 구성돼 있다. 시각장애라는 고유한 경험을 당사자의 언어로 풀어내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보편성과 문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소설집 마지막에 있는 에세이 ‘소설가가 되었다’는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던 작가의 연대기를 그린다. 조승리 씨는 2023년 샘터 문예공모전 생활수필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집필 활동을 시작했고, 수필집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펴냈다. 문의 02-704-1724 04.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올해 장애인고용 통계조사 실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장애인 고용정책의 수립과 평가에 필요한 노동시장 기초 통계 자료를 생산하고자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와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는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장애인 고용 규모를 추정하고, 고용·미고용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된다. 조사 대상은 상시근로자 1명 이상을 둔 기업체 3만 개소이며, 조사 기간은 9월까지다.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는 발달(지적, 자폐성) 장애인의 생활 및 취업실태, 서비스 욕구를 파악해 발달장애인 고용·복지정책 설계와 종합적인 지원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시행된다. 만 15세 이상 발달장애인이 있는 3,000가구의 장애 당사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조사 기간은 9월까지다. 조사 결과 자료는 공단 누리집(http://www.kead.or.kr)과 고용개발원 누리집(http://edi.kead.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1588-1519 05. G마켓, 시각장애인 위한 G마켓 사용설명서 공개 G마켓이 시각장애인 고객의 쇼핑 편의성 향상을 위해 스크린리더 전용 G마켓 이용 매뉴얼을 공개했다. 상품 검색부터 장바구니 담기, 프로모션 확인, 결제 등 쇼핑에 필요한 전 과정을 실제 스크린리더 사용 환경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실제 시각장애인 사용자의 의견을 반영해 실용성과 접근성을 대폭 강화했다. 마우스 클릭이나 스크롤 중심의 설명 대신, 스크린리더 이용자에게 필요한 단축키 및 다양한 키보드 조작법을 중심으로 사용법을 안내한다. 사용 중 불편함이 있으면 접근성 신고센터를 통해 직접 문의를 남길 수 있도록 소통 창구도 마련했다. 문의 1566-5701(고객센터) 06.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8월 개막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8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비엔날레전시관과 광주 시내 일원에서 개막한다.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너라는 세계: 디자인은 어떻게 인간을 끌어안는가(You, the World: How Design Embraces Humanity)’를 주제로 포용 디자인의 가치와 의미를 전한다. 미국·일본·영국 등 11개국 작가 220여 명과 80개 기관·단체의 작품을 통해 디자인이 우리 주변 존재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방식이자 안아주는 방법론임을 전달한다. 포용 디자인과 세계(Inclusive World)를 주제로 한 1전시관은 세계 각국의 포용 디자인과 디자인 대학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포용 디자인과 삶(Inclusive life)이 주제인 2전시관은 디자인을 통한 일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포용 디자인과 모빌리티(Inclusive Mobility)를 주제로 한 3전시관은 이동 약자 등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해 디자인을 확장한 사례들을, 포용 디자인과 미래(Inclusive Future)를 주제로 한 4전시관은 인공지능 기술과 디자인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간 거리감을 좁히는 포용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문의 062-608-4114 07. 제29회 보훈 콘텐츠 공모전 국가보훈부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제29회 보훈 콘텐츠 공모전’을 8월 30일까지 개최한다. 공모전 주제는 ▲조국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 ▲6·25전쟁 등에서 빛났던 호국정신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등 민주정신 ▲6·25전쟁 당시 참전한 유엔참전 22개국에 대한 감사 ▲군인·소방·경찰·교도관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제복 근무자에 대한 내용이다. 영상과 디자인, 문예, 인공지능 형식의 콘텐츠면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공모전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은 공모전 누리집(https://보훈콘텐츠공모전.com)을 통해 접수할 수 있다. 접수된 작품은 3차례의 전문가 심사와 누리꾼 투표 등을 거쳐 총 54점이 선정된다. 오는 11월 국가보훈부장관상과 총상금 4,000여만 원이 수여된다. 문의 070-4060-4046 공감 정책 I 전 국민에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한다 -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경제의 회복과 지역 균형 발전 기여 정부가 최소 15만 원에서 최대 55만 원 상당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모든 국민에게 1차로 지급하고, 2차로 국민의 90%를 대상으로 10만 원을 추가 지급하기로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지역 민생경제 회복에 기여하고 지역 내 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도록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쿠폰이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업은 소비 진작과 소득 지원 두 가지 측면을 고려했으며, 전 국민 1인당 15만 원을 기본으로 하되 소득별 맞춤형 지원을 위해 차상위계층과 한부모가족은 1인당 30만 원, 기초생활수급자는 1인당 40만 원으로 결정했다. 이와 별개로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비수도권 지역 주민에게는 3만 원을,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농·어촌 인구감소지역(84개 시·군) 주민에게는 5만 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1차 지급 대상은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계획의 발표일 전일인 지난 6월 18일을 기준으로 국내에 거주 중인 국민이다. 신청은 9월 12일 오후 6시까지 온·오프라인으로 신청하면 된다. 신용·체크카드, 선불카드, 지역사랑상품권 중 원하는 방식을 선택해 지급받을 수 있다. 온라인 신청은 신청 기간 중이라면 24시간 신청이 가능하고, 오프라인 신청은 같은 기간 중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은행 영업점은 오후 4시까지) 가능하다. 신용·체크카드 지급을 원하는 국민은 자신이 이용 중인 카드사의 누리집이나 앱, 콜센터와 ARS 등을 통해 신청하거나 카드와 연계된 은행 영업점을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 모바일 또는 카드형 지역사랑상품권 지급을 희망하면 주소지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사랑상품권 앱 또는 누리집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지류형 지역사랑상품권 또는 선불카드 수령을 원하는 국민은 주소지 관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또는 주민센터, 읍·면 사무소)를 방문하면 소비쿠폰 신청과 수령이 가능하다. 국민비서 알림서비스를 신청한 국민은 지급금액, 신청 기간과 방법, 사용기한 및 지역 등 맞춤형 정보를 미리 안내받을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등 접근성이 낮은 국민의 편의를 위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방문해 신청을 접수하고 소비쿠폰을 지급하는 ‘찾아가는 신청’도 운영된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은 주소지 관할 지방자치단체로 제한된다. 가령 특별시 또는 광역시 주민은 해당 특별시·광역시에서, 도 지역 주민은 주소지에 해당하는 시·군에서 사용할 수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 가능 매장에는 안내 스티커를 부착할 예정이다. 관내에 마트, 슈퍼, 편의점 등 유사 업종이 없는 면 지역에 한해 약 125개의 하나로마트를 상품권 사용처에 포함했다. 다만 대형 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백화점 및 면세점, 온라인 쇼핑몰과 배달 앱, 유흥·사행 업종, 환금성 업종 등은 사용이 제한된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11월 30일까지 약 4개월 이상 사용할 수 있으며, 기간 내에 사용하지 않은 잔액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환수할 예정이다. - 2차 지급은 9월 22일부터 1차 지급과 별도로 2차 지급은 건강보험료를 활용한 소득 선별 과정을 거쳐 국민의 90%를 대상으로 1인당 10만 원을 추가 지급한다. 선별 과정에 일정한 시간이 소요되는 2차 지급은 오는 9월 22일 시작해 10월 31일 종료할 예정이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 간의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강보험료 외의 고액자산가를 제외할 수 있는 기준을 추가로 적용한 대상자 선정 기준을 마련해 오는 9월 중 발표한다. 세부적인 사항은 지급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신속하게 안내할 계획이다. 문의 행정안전부 재정정책과(044-205-6060), 기획재정부 복지예산과(044-215-7511), 보건복지부 급여기준과(044-202-3145) 대한민국정책브리핑(www.korea.kr) 공감 정책 II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 - 만족도 93.8점! 보호자는 돌봄 부담 덜고 이용자는 정서적 안정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가 시행 1년 차를 맞았다. 이 서비스는 타인에게 해를 가하거나 자해하는 등 도전행동으로 기존 돌봄서비스를 받기 어려웠던 발달장애인에게 보건복지부가 맞춤형 1대 1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2024년 6월 전국 17개 시·도에서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비스에 대한 반응은 매우 좋다. 이 사업을 시행하는 복지부는 서비스 시행 1주년을 맞아 실시한 보호자 만족도 조사에서 93.8점을 얻었다고 6월 11일 밝혔다. 이용자 만족도는 이보다 높은 96.3점이었다. 통합돌봄서비스 제공 내용과 관련한 ‘이용 환경 만족도’는 보호자 89.4점, 이용자 95.7점, ‘제공인력 친절도’는 보호자 96.8점, 이용자 98.7점, ‘제공인력 전문성’은 보호자 91.4점을 기록했다. 서비스 이용 후 변화에 대해선 보호자의 경우 ‘돌봄 부담 완화 및 스트레스 해소’라고 답한 비율이 76.2%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은 ‘정서적 안정(58.1%)’, ‘가족관계 개선(50.2%)’ 등의 순이었다. 보호자 관점에서 본 이용자의 변화로는 ‘정서적 안정’이 67%로 가장 높았다. ‘도전행동 완화’는 44.9%, ‘가족관계 개선’은 37.4%를 기록했다.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보호자와 이용자 각각 97.8점, 97.7점을 줬다. 서비스 개선을 위한 주요 의견으로는 ▲프로그램 다양화 및 맞춤형 지원 ▲이용 시간 연장 등 탄력적 운영 ▲공간 확충 및 환경 개선 등이 있었다. 이번 조사 결과 보고서는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누리집(broso.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7월 초 통합돌봄서비스 1주년을 맞아 전문가 및 보호자 간담회도 개최했다. Q.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는 무엇인가요? A.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낮에는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밤에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에요. 이를 통해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건강한 삶을, 보호자는 돌봄 부담을 덜 수 있어요. 서비스 유형으로는 야간 돌봄을 포함한 24시간 서비스와 개별·그룹으로 제공하는 낮 활동 서비스가 있어요. Q. 구체적으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받나요? A. 모든 서비스는 낮 동안 이용자가 지역사회 안에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요. ▲수영, 댄스, 요가, 볼링 등 체육 활동 ▲간식 만들기 등 요리 활동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사진 찍기 등 예술 활동 ▲소풍, 전시회 관람, 카페 가기 등 야외 활동 등이죠. 24시간 서비스는 여기에 더해 씻기, 식사하기, 잠자기 등 일상생활과 설거지, 빨래, 쓰레기 버리기 등 가사 활동도 이용자가 할 수 있도록 도와요. Q. 이용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A. 모든 서비스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공하지만 이용 시간은 조금씩 달라요. 주간의 경우 개별 서비스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그룹 서비스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이용할 수 있어요. 24시간 서비스의 경우에는 목요일까지는 하루 종일 제공되지만 금요일은 오후 8시까지만 이용할 수 있어요. 주말과 공휴일에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요. Q. 누가 신청할 수 있나요? A. 18세 이상 65세 미만의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신청할 수 있어요. 공무원이나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직원이 대신 신청할 수도 있고요. 단,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나 방과 후 활동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장애인 일자리 등을 통해 취업 중인 분, 장애인 거주시설에 사는 분, 외국에 사는 분 등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어요. Q. 어디에 신청하면 되나요? 신청 기간은요? A.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누리집 등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후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에 제출하면 돼요. 방문이 힘든 경우 우편이나 팩스를 통해서도 제출할 수 있어요. 지방자치단체별로 신청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행정복지센터에 개별 문의해야 해요. Q. 신청하면 바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나요? A. 아니에요. 지원 여부는 문제 행동 수준, 의사소통 능력, 일상생활 수행 능력 및 지원 필요도를 기준으로 방문 조사와 시·도별 서비스조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돼요. 선정 결과는 신청 후 30일 안에 나와요. 모든 서비스는 유형별 지원 가능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신청을 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Q. 서비스 정원은 몇 명인가요? A. 야간 돌봄이 포함된 24시간 서비스 340명을 비롯해 주간 개별 지원 500명, 주간 그룹 지원 1,500명 등 총 2,340명이에요. Q. 서비스 제공이 결정되면 몇 년 동안 지원해주나요? A. 모든 서비스의 유효 기간은 3년이지만 갱신이 가능해요. 24시간 및 주간 개별 서비스는 1년씩 두 번 갱신할 수 있어요. 총 5년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셈이죠. 주간 그룹 서비스는 계속 갱신이 가능해요. Q. 비용은 무료인가요? A. 이용자가 따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없어요. 다만 제공 기관에 따라 식사, 관람료 등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어요. Q. 추가 문의는 어디로 연락하면 되나요? A. 보건복지부 상담센터(129),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와 17개 시·도별 지역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문의할 수 있어요. 정책주간지 〈K-공감〉 공감 현장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앵커 노희지 씨 -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가능성이 될 수 있길” 매일 낮 12시 ‘KBS 뉴스 12’의 ‘생활뉴스’ 코너는 KBS 제8기 노희지 앵커가 진행한다. 노 씨의 진행을 들으면 별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는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앵커다. 수어가 아닌 발화로, 그것도 비장애인 앵커와 다르지 않은 속도로 또박또박 뉴스를 전하는 노 씨는 선천적으로 중증(3급)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오랜 언어치료를 받아 발화는 가능하지만 보청기 없이는 자신의 말소리를 인지하기 어렵고 비행기 이륙 소리조차 겨우 들릴 정도다. 그는 어린 시절 대다수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청력을 가진 줄 알았다고 한다.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야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또래보다 언어 발달이 느리고 이름이 불려도 곧바로 반응할 수 없었던 이유를 뒤늦게 이해했다. 초등 저학년 시절 그는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학생이었다. 점점 주변 이야기를 잘못 받아적거나 ‘사오정’이라고 놀림받는 일이 잦아지면서 위축되고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다. 청각장애를 숨긴 채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아나운서가 꿈이었지만 포기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았다. 대학교 졸업 때까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이어졌다. 그러나 다운증후군 작가 정은혜 씨와 청각장애인 아이돌 그룹 ‘빅오션’ 등 대중매체에 비친 장애인의 모습을 보고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노 씨가 앵커로 발탁된 지 한 달여가 지나 인터뷰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통역은 필요하지 않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상대편의 입 모양을 유심히 보며 대화를 나눈다는 것뿐, 대화의 흐름이나 속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Q. 앵커석은 좀 익숙해졌는지? A.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로 아나운서 지원을 준비했다. 내가 앵커가 됐다는 게 여전히 실감나지 않고 꿈꾸는 기분이다. 늘 긴장되지만 앵커석에서 카메라 빨간불을 기다리는 순간이 가장 떨린다. 나만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Q. 앵커 발탁 소식이 알려진 뒤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 A.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그중에서도 ‘세상에서 제일 멋진 뉴스다’, ‘당신의 도전이 내게 울림이 됐다’는 댓글이 인상 깊었다. 정말 과분한 응원을 받고 있는 것 같다. Q.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A. 아나운싱은 단순히 읽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원고에 대한 이해부터 발성, 발음, 톤, 포즈까지 종합적으로 이뤄진다. 청각장애가 있다 보니 적당한 톤으로 명확한 소리를 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자’,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젓가락 물고 발음 연습하기, 복식호흡 훈련, 원고 리딩을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첫 방송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진 않았느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울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여서 아쉬움이 컸고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먼저였다. Q. 말하는 속도나 발음의 정확도만 보면 청각장애가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 A. 보청기의 도움을 받고 있다. 보청기를 빼면 바로 발음이 어눌해져서 인플루엔자(독감)에 걸린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다. 청각장애인이라고 밝히면 많은 사람이 “당연히 말은 못하겠지”, “수어를 쓰겠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나는 청능 훈련을 오래 한 덕분에 말로 소통하는 게 훨씬 익숙하다. 방송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잘한다. 종종 “너는 장애인 티가 나지 않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수어를 쓰는 사람, 수어와 구화를 하는 사람, 또 나처럼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등 청각장애도 다양한 모습과 의사소통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Q. 뉴스를 진행할 땐 보청기 대신 인이어(제작진의 지시를 실시간으로 듣는 장치)만 착용하나? A. 보청기는 왼쪽에, 인이어는 그나마 청력이 조금 나은 오른쪽 귀에 착용한다. 인이어에서 나오는 소리를 최대로 키워야 겨우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된다. 제대로 듣지 못해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집중해야 한다. Q. 청력이 좋지 않다는 건 언제 깨달았나? A. 열세 살 때 내가 먼저 청력 검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부모님께 얘기했다. 선천적인 장애였는데 가족이나 지인 중에 청력이 나쁜 사람이 없다 보니 부모님이 청각장애 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집중력이 떨어져서 알아듣지 못하거나 발달이 늦은 편이라고만 여겼다더라. ‘ㅅ’, ‘ㅈ’ 발음을 잘 못해서 세 살 때부터 소아정신과 부속 언어치료실을 다녔다. 원인을 모른 채로 혹독하게 언어치료를 받았다. 6년간 설압대(혀 누르개)를 입에 물고 작은 떨림의 차이를 느끼면서 말을 익혔다. 혀 위치와 입술 모양, 복압에 따라 어떻게 소리가 나오는지도 외워야 했다. 말을 또박또박 하지 못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Q. 언어치료 외에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A. 주말마다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나 그곳의 계절을 느꼈다. 부모님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을 다 돌았다. 독서논술토론학원, 미술학원, 레고학원, 종이접기, 발레 등 내가 세상을 몸으로 느끼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부모님이 도와줬다. 그 덕분에 내가 앵커가 돼 말을 하고 누구보다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어른이 됐다. Q. 보청기는 언제부터 끼기 시작했나? A. 중학교 입학 직전에 보청기를 끼기 시작했다. 이전에 듣지 못했던 잡음이 너무 크게 들려서 놀랐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출 때처럼 “지지직” 하는 소리였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특히 급식실에서 힘들었다. 너무 시끄러우니까 대화를 알아듣지 못해 친구들이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내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 오해를 많이 받았다. 반대로 듣게 돼서 반가운 소리라면 물소리다. 전에는 고요하기만 했던 소리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소리가 됐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울 땐 바다에 간다. Q. 숨겨오던 장애를 드러낸 계기가 궁금하다. A. 성인이 되고 청각장애인 모임에 나가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장애도 내 정체성의 하나인데 왜 숨기기 급급했을까, 왜 부끄러워했을까 후회가 됐다. 같은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연대의 힘이 커졌던 것 같다. 나처럼 혼자 끙끙 앓으며 힘든 길을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장애를 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중고등학생 때만 해도 이렇게 장애인이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일은 드물었다.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니 숨지 말라는 이야기도 해주고 싶다. 밝게 이야기하던 그가 동생 이야기를 꺼낼 때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여섯 살 어린 동생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노 씨에게는 동생이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도 동생이 가장 큰 이유였다. Q. 언니의 행보가 동생에게 좋은 자극이 되겠다. A. 글쎄(웃음). 장애인 앵커를 꿈꾸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동생이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존재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언니가 돼주고 싶었다. 나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친구들한테 소개할 때 너무 고맙고 뿌듯하다. Q. 지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A. 청각장애인 아이돌 그룹 ‘빅오션’을 만나고 싶다. 데뷔 무대가 빛이 나더라. 정말 피나는 노력을 통해 무대에 섰을 거다. 세 멤버와 깊은 속마음을 나눠 보고 싶다. 그리고 11월에 일본 도쿄에서 데플림픽(청각장애인 세계 스포츠 대회)이 열린다. 이런 대회가 있다는 걸 알리고 한국 선수들의 활약을 직접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나에게 앵커는 숨죽여 울던 어린 노희지, 상처가 너무 커서 아팠던 노희지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내가 위로를 받게 된 것처럼 나 역시 소외된 사람들의 말소리를 전하는 아나운서, 앵커로 기억되고 싶다. Q.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앵커’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는 않나? A.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나의 도전을 보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가능성에 함부로 한계를 두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릴 때 언어치료를 받으면서 수없이 또래들과 비교당했다. 그럴수록 나는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스스로 한계를 정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페루, 칠레, 발리 등을 여행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나는 하나뿐인 존재인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이후로 나의 비교 대상은 ‘어제의 나’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정책주간지 〈K-공감〉 특집 광복 80주년, 새로운 역사의 꽃 피어나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훈, ‘그 날이 오면’ 전문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조국의 자주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치열하게 항쟁한 끝에 우리는 빼앗긴 주권을 되찾는 ‘광복’을 1945년 8월 15일 이뤄냈습니다.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지만,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열정과 꿈을 이어나갔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오늘, 광복의 의미는 더 크게 다가옵니다. 광복절은 1949년 5월 국무회의에서 8월 15일이 독립기념일로 의결되었고, 이후 광복절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국경일로 제정되었습니다. 자주 독립과 주권 회복은 물론,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날로써, 삼일절, 한글날, 개천절, 제헌절과 함께 5대 국경일로 지정돼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정부 부처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조폐공사는 ‘광복 80년 기념메달’을 제작했습니다. 이 메달은 일제강점기를 견딘 민족의 저력과 광복 이후 이룬 눈부신 성장의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메달의 앞면은 광복 이후 세계와 연결된 대한민국의 성장을 80년의 파동으로 형상화했습니다. 메달 제조 등급 중 가장 높은 프루프 등급으로 생산돼 작품의 정교함과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광복 80주년 태극기 달기-올리면 울림’을 진행 중입니다. 태극기 달기 홍보 영상 및 포스터 등을 활용하여 태극기를 바르게 다는 법을 알리고, 지하철 및 버스의 안내방송, 공동주택의 안내방송, 전국 옥외 전광판 광고를 통해 태극기 달기에 동참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SNS를 이용해 태극기 달기 홍보도 병행, 학생과 젊은 세대들이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광복 8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우표에는 1949년 공모를 통해 탄생한 ‘광복절 노래’(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 가사가 적혀 있습니다. 또한 전지 면에는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에 수록된 시 ‘새로운 길’ 일부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념우표는 가까운 총괄우체국을 방문하면 구입이 가능합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박물관이나 관련 공원을 방문하는 건 어떨지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10월 12일까지 상설전시관 내 대한제국실에서 광복 80주년 기념 전시 ‘광복 80주년, 다시 찾은 얼굴들’을 전시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현존하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데니 태극기’,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 등 독립운동 관련 소장품이 공개됩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한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도 최초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8월 31일까지 경기도 파주 민속아카이브 정보센터에서 ‘되찾은 빛, 이어질 노래 아리랑’ 영상 전시를 엽니다. 이번 전시는 민속아카이브가 소장한 국내·외 아리랑 및 생활사 관련 자료를 활용한 미디어아트 전시로,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공동체의 화합과 그 정신의 보존·계승이라는 미래 지향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백범김구기념관은 최근 디지털 전시물 설치를 마치고 재개관했습니다. 2층 상설전시실에 백범일지에 언급된 250명의 인물과 223건의 사건, 84곳의 장소를 확인할 수 있는 ‘백범일지 아카이브월’을 설치했습니다. 관람객이 백범일지의 책장을 넘기며 읽고, 주요 내용을 한 모니터 상에서 국·영문으로 살펴볼 수 있는 ‘백범일지 디지털 북 키오스크’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충칭청사의 내부 모습과 임시정부 주요 정보, 인물, 숨겨진 일화 등을 증강현실로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도 재개관했습니다. 로비에 대형 LED월을 설치해 안중근 의사 유묵 영상 등을 상영하고, 1~3전시실의 그래픽 전면 교체 그리고 3전시실의 하얼빈 의거부터 법정투쟁까지의 과정을 디지털 전시로 개편했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는 초등학생을 위한 ‘안중근 서-평화를 쓰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안중근 의사의 삶과 활동을 탐구하고 관람한 유묵을 직접 써보는 체험을 합니다. 고등학생을 위한 ‘함께 완성해가는 동양평화론’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유작 ‘동양평화론’의 미완 부분을 오늘날 동아시아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탐구하고 토론합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3개 상설전시실과 1개 특별전시실에서 1919년 3·1 운동부터 현재까지 임시정부와 관련된 자료 1천여 점을 전시합니다. 3개의 상설전시실은 2층에서 4층까지 1,656㎡(501평)의 넓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된 3·1운동부터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의 활동이 주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념관 1층 옥외 광장에는 ‘역사의 파도’라는 주제의 상징벽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임시정부의 독립 염원과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에 이르는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추진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는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의지와 정신으로 광복을 이뤄냈습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을 맞이한 오늘, 의미 있고 소중한 광복절을 보내길 바랍니다. 김예원 변호사의 쉽고 재미있는 형사사법 사례를 통한 수사 진행 과정을 알아봅시다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김예원 변호사가 어려운 형사사법체계를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특히 범죄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모았습니다. 사라 씨(가명)는 21세의 지적장애를 가진 여성으로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한 남성이 “한 번 만나주면 예쁜 강아지를 선물로 주겠다”고 말하며 접근했고, 메신저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실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성은 차 안에서 사라 씨에게 성폭력을 저질렀습니다. 사라 씨는 집에 돌아와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습니다. 부모님에게 말하면 혼날까 봐 두려웠고, 자책과 혼란 속에서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사라 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피해자가 스스로 사건을 밀고 나가야 하는 구조는 때로는 가혹합니다. 특히 자신의 법적 권리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수사기관과 법원을 상대하는 일은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부담이 큽니다.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바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입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성폭력, 아동학대, 장애인학대 및 인신매매 피해자처럼 스스로의 권리를 충분히 주장하기 어려운 피해자들을 위해 국가가 선임해주는 변호사입니다. 검사의 결정으로 선임되며, 피해자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법률적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는 단순한 법률 상담을 넘어, 피해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입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피해자가 단지 수사기관에 진술을 하고 마는 존재가 아니라, 형사 절차에서 존중받아야 할 ‘주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11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처음 도입된 뒤, 2013년 성폭력처벌법,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2022년 장애인복지법, 그리고 2023년 인신매매방지법까지 제도의 범위가 확장되어 왔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점점 더 ‘피해자의 자리’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수사 단계에서는 경찰 및 검찰 조사에 참여해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나 증거보전 절차에도 함께합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나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이의를 제기할 때에도 피해자와 함께 대응하며, 피해자의 권리가 형식적인 절차 속에 묻히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재판 단계에서는 공판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하고, 피해자가 불안이나 공포 없이 법정에 설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형사합의나 형사조정, 배상명령 신청 등 배상 관련 절차도 도와 경제적 회복까지 지원합니다. 특히 아동이나 장애인과 같이 방어 능력이 취약한 피해자의 경우,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가정법원의 아동보호사건, 피해아동보호명령, 보호처분 절차 등에도 깊이 관여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학대 가해자인 경우에는 친권 제한이나 미성년후견 지정까지 법률적으로 돕고, 피해 아동의 주거와 양육 환경 개선을 위한 법원 심리에도 참여합니다. 물론 여전히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변호사 선임 기준이 협소하거나, 지역에 따라 접근성이 차이가 나고, 예산과 인력 문제로 인해 실질적 지원이 미흡한 경우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는 피해자 중심의 형사 절차를 만들기 위한 소중한 첫걸음이자, 앞으로 더 확장되어야 할 제도입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이용 방법은 간단합니다. 위에 언급한 범죄 피해자는 경찰에 피해 사실을 최초로 알리면서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선정해주세요” 하고 요청하면 됩니다. 그럼 경찰은 검찰청 피해자 지원실에 국선변호사 선정을 신청하고 검찰청에서 선정하여 피해자에게 알려줍니다. 피해자가 더 이상 혼자 법정에 서지 않도록, 절차 속에서 침묵하지 않도록, 이 제도가 필요하신 분은 적극적으로 이용하시길 권해드립니다. 형사사법은 단지 법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연결된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어떻게 일하는지, 그리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김예원(변호사) 살며 생각하며 아욱된장국 속의 안도 해 질 녘 오래된 가옥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에 접어들면 매번 된장찌개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맡으면 나는 어김없이 집으로 뛰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내가 향하고 싶은 장소는 허름하고 낡은 고향 집이다. 지긋지긋하지만 그립고 슬프지만 아련한 그곳이다. 배달 오토바이가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좁은 인도에 서서 깨지고 뒤틀린 보도블록을 발꿈치로 더듬는다. 곰팡내 나는 시큼한 감정이 먼지처럼 일어난다. 내 감정은 나이 먹지 않고 여전히 열다섯에 머물러 있다. 오렌지빛 석양이 눈으로 들이친다. 빛과 어둠만 구별할 수 있는 내게 석양은 유일하게 감지할 수 있는 색이다. 흰지팡이를 짚고 나는 옛 기억으로 걸어 들어간다. 처음으로 고독함을 느꼈던 열다섯 살의 내가 오래된 빌라 골목을 맴돈다. 오렌지빛 석양이 긴 그림자 사이로 들어찬다. 나는 가출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엄마와 싸웠기 때문에 그날 아침 무엇이 화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우리는 죽일 듯 미워했고 날카로운 말로 서로를 공격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결투가 반복됐다. 그날은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엄마 앞에서는 결단코 울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눈물이 터졌다. “재수 없게 기집애가 아침 댓바람부터 눈물 바람이여.” 따가운 질책이 뺨을 내려쳤다. 엄마가 부엌에서 우당탕거리며 밥상을 차렸다. 나는 화가 나서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머릿속으로 유치한 복수를 계획했다. 비행과 가출이 그것이었다. 수업을 받는 둥 마는 둥하고 창밖만 내다봤다. 하교를 하고 정처 없이 읍내를 떠돌아다녔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내 앞에서 신호를 받고 있었다. 나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학원들이 모여 있는 빌딩을 지나갔다. 고소한 치킨 냄새가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었다. 점심 급식을 많이 먹어둘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데 유리창 안에서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컵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먹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눈길을 돌렸다. 상가들이 즐비한 대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갔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구역이었다. 담장 높은 주택들과 오래된 3층 빌라들이 어수선했다. 길거리에 쓰레기들이 굴러다녔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자전거를 타고 좁은 골목에서 튀어나왔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갔다. 흙바닥 공터에는 하나뿐인 농구 골대가 덩그러니 서 있고 구석에 폐타이어가 쌓여 있었다. 나는 길을 돌아 나왔다. 대로를 건너 하천 길을 따라 걸었다. 5층짜리 아파트가 가동, 나동, 다동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었다. 단지 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소리를 깩깩 질러가며 놀고 있었다. 승합차가 빠른 속도로 내 옆을 지나갔다. ‘○○속셈학원’이라 적힌 문구가 옆구리와 후미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옛 동급생이 아파트 단지에서 걸어 나왔다. 그 애는 작년 나와 같은 반이었다. 나는 두 번 그 애의 집에 놀러 간 적 있었다. 학년이 오르며 반이 갈라졌고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우리는 신호등 반대편에 마주 서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손을 들어 인사했고 상대는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아는 체하지 말라는 속마음이 역력히 느껴졌다. 신호등이 바뀌고 우리는 최대한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갔다. 쳐들었던 손이 민망했다. 속으로 동급생을 흉봤다. 인도를 따라 걸었다. 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는 발길이었다. 자연스럽게 익숙한 장소가 떠올랐다. 내 목적지는 도서관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를 질러가는 것이 지름길이었지만 나는 치사스러운 마음이 들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 블록을 지나 주택가로 들어섰다. 작은 상가 주택들과 오래된 양옥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좁은 길에서 자동차를 만나면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야 했다. 부지런히 걸어 도서관으로 갔다. 용돈이 좀 남아 있다면 매점에서 뭐라도 사 먹고 싶었는데 지갑 속에는 집에 돌아갈 버스표만 달랑 들어 있을 뿐이었다. 길에는 길어진 그림자만 표정 없는 동급생처럼 무심히 기울어져 갔다. 도착한 도서관 정문은 폐쇄되어 있었다. 굳게 닫힌 바리케이드에 월요일은 휴무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20분 후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있었다. 그 버스를 놓치면 또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바닥에 고개를 파묻듯 숙이고 터벅터벅 걸어 다시 주택가로 들어갔다. 담장 너머에서 밥솥이 칙칙 김을 뱉는 소리가 났다. 골목에 배어 있는 된장찌개 냄새가 나를 쓸쓸하고 불우하게 만들었다. 평소 즐기지도 않는 된장찌개가 허기를 부추겼다. 반항심으로 들끓던 감정이 점차 식어 갔다. 집이 그리웠지만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멀리 떠나고 싶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머릿속은 복잡한데 내 발은 성실히 움직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런 내 현실이 처량 맞았다. 바람이 놀리듯 된장찌개 냄새를 내 코앞에 밀어 놓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집은 버스에서 내려 30분은 걸어 들어가야 했다. 시내버스가 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멀어졌다. 나는 숨을 참고 먼지 구덩이를 벗어났다. 해가 서쪽 산마루에 걸려 있었다. 들판이 왁자지껄했다. 트럭과 농기계가 추수한 작물들을 거두느라 바빴다. 하천 길을 따라 걷는다. 우리 집까지는 작은 부락 두 곳을 지나야 한다. 오토바이가 내 옆을 지나간다. 윗동네 노부부다. 장에 다녀오시는지 할머니 손에 시장 가방이 한 짐이다. 날은 금세 어둑해진다. 걸음을 서두른다. 배 과수원을 지나 다리를 건넌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동네로 접어들자 벌써 문단속을 하는지 어느 집 철대문 닫는 소리가 고막에 부딪힌다. 집 앞마당에 엄마의 차가 있다. 하지만 대문이고 축사 안이 어둑하다. 짐승들이 나만 기다렸다는 듯 배고프다 투정을 부린다. 엄마는 아직 들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리라. 교복을 갈아입고 축사로 나와 사료를 플라스틱 삼태기에 쏟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배식을 시작한다. 텅 빈 물통마다 양동이로 물을 퍼다 채운다. 마지막으로 건초를 주고 손을 닦고 집에 들어온다. 개수대에는 설거짓거리가 가득 쌓여 있다. 무시하고 가스레인지 위 냄비들을 열어 본다. 커다란 냄비에 아욱된장국이 가득하다. 전기밥솥에는 언제 했는지 모를 밥 한 덩이가 말라붙어 있다. 나는 국을 데우고 대접에 밥을 퍼서 된장국에 말았다. 선 채로 밥을 삼키는데 점심에 엄마도 나처럼 한 술 때우고 나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욱신했다. 아침나절에는 그토록 밉고 원망스러웠던 엄마가 지금은 안쓰럽고 측은했다. 대접을 들어 급하게 국물을 들이켰다. 부드럽고 미끈한 아욱 줄기가 술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안방에 불을 켜두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새 사위는 어둠으로 가득 찼다. 나는 대문 위 전등도 켜 두었다. 숨에서 끈끈한 된장국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연신 밖을 살폈다. 먼 어둠 속에서 지친 엄마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은 안도였다. 조승리(에세이스트)